꼭 한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5

5화. 나의 임신

by 연영


12시 15분.


밥이 나왔다.

삼발이에 납작한 양초를 켜고 수육접시를 올린다.

금방 볶아 나온 통통한 낙지볶음에 군침이 넘어간다.

꼬막과 부추전이 나오고, 데친 두릅과 해파리냉채가 먹음직하다.

배추 겉절이는 오빠가 좋아하는 거라 호박나물과 자리를 바꿔둔다.

굴전, 무말랭이, 오징어숙회, 등 한상 가득 반찬을 받고 보니 특상은 특상이다.

마지막으로 성게미역국과 곤드레 솥밥이 놓이고, 점원은 빠진 게 없는지 테이블을 둘러보곤 자리를 옮긴다.


음식이 맛있으면 몸이 들썩인다.

알배추에 수육 한 점, 무말랭이, 쌈장, 마늘을 모두 올려 한입 가득 먹고는 오빠를 향해 엄지를 들어올린다.

두 발은 연신 식탁 밑에서 통통 뛰고 있다.


“으음! 음!음!”


맛있다는 뜻이다.

오빠는 수육을 다시 집어 내 밥그릇에 얹는다.


“공짜니까 맛있지! 마이 무라. 수육만 따로 추가 된다.”


나는 사실 음식 맛보다 이 편안함이 더 좋다.


“아이다. 반찬이 이래 많은데. 애들이랑 식당가면 꼭 애들 먼저 주고 나는 나중에 먹는데 음식이 따뜻할 때 내 먼저 먹으니까 너무 좋다. 근데 빨리 먹어야 된다. 오늘 4교시 하는 날이라서 태권도 갔다가 와도 3시거든. 여기서 2시엔 나서야 되는데 차 한 잔 묵고 갈라믄 바쁘다.”


아이들이 있을 땐 아이들 먹을 걸 먼저 챙기고, 혼자 먹자면 또 대충 먹기 마련인데 오늘처럼 점심 약속이 생기면 그 한가로움이 그렇게 달다.

아이가 없을 땐 엄마가 되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아이가 둘이나 되고 보니 또 그 자리가 힘에 부친다.


나는 첫째 임신이 순탄치 않았다.

결혼 1년 반이 지나고 불임전문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병원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원인 없는 부부들 불임이 많아지는 추세라며 이 경우가 임신이 더 어렵다고 했다.

절대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의사도 있었다.

단호한 전문가 견해에 우리는 인공수정을 결정했다.

딱 한번 했던 인공수정은 실패했고,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어떤 의료적 시도도 하지 않기로 했다.

많이......참 많이 속상했다.

그 즈음엔 연예인 누가 임신했다거나 출산했다는 장면도 보지 싫어 꺼버릴 정도였다.

나는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보려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신나는 노래들을 골라 춤도 춰가며 놀았다.

시간이 다 돼 갈 무렵 남편이 마이크를 잡았다.

“힘겨운 날에 너 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남편은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내사랑 내곁에’를 부르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도 불임부부라는 낯선 이름에 짓눌려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서도 내내 어른스럽게 나를 달래 온 거다.

내가, 그리고 남편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남편과 나는 멀리 살고 있는 언니네 집으로 여행을 갔다.

1년 동안 난포가 터졌느니, 수정이 안 됐느니, 이런 것들에 매달렸던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고, 모두 포기하고 난 후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둘 다 내상이 상당했다.

환기가 필요한 시점, 편안한 여행을 했고 두 달 후 임신을 확인했다.

임신? 남편은 두 줄이 뚜렷한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불임클리닉 의사를 찾아가 따져야 되는 거 아니냐며 흥분했다.

자신의 번식 능력이 도마에 올라 무참히 난도질당했던 지난 1년에 대한 울분이었겠지만 나는 조용히 남편을 진정시켰다.


아무려면 어때! 나는 임신을 했는데!


그때는 임신만 하면 끝인 줄 알았다.

또 다른 문이 하나 열린 것일 뿐.

새로운 퀘스트가 줄줄이 열렸다.


모유수유를 하시겠습니까? 통곡의 마사지가 필요해요.

모세기관지염이 발병하였습니다. 입원 하세요.

이유식을 거부합니다. 방법을 찾아보세요.

젖을 뗄 시간입니다.

둘째를 가지시겠습니까?

입덧과 육아, 그리고 살림을 동시에 해결세요.

어린이집에 독감이 유행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세요.


등등.


퀘스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초등학생이 되어 이제 전만큼 손이 가진 않지만 그만큼 쉬워졌단 이야긴 아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커주는 것만 해도 더 바랄 것이 없다.

애들 어릴 때 찍어 둔 영상을 보며 힘들어도 그때가 좋았다며 한참이나 들여다보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문득문득 벗어나고 싶다


엄마들은 다 놓고 훌훌 떠나고 싶은 때가 있다.

이 가정이 온전히 나를 갈아 만드는 거 아닌가 하는 순간.


다시 아빠가 해주는 삼시세끼 먹고, 용돈 받아 차 마시고 영화보다 술 한잔 먹고 춤 추러가고 싶다.


나이트 클럽 앞까지 친정오빠가 데리러와 내 친구들까지 다 집에 내려주던 그 때로.


그 밤, 오빠의 하얀 카니발 앞자리에서 내가 구두를 벗자 발냄새 난다며 창문을 열 던 오빠 모습도, 깔깔대며 같이 웃던 내 친구 얼굴도 모두 그립다.


나는 행복한 엄마지만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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