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4
4화. 오빠와 점심
11시 50분.
'까똑‘
‘어디고?’
오빠다.
오빠는 아빠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아빠집이랑 가깝다.
온 김에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해야겠다.
‘아빠 집이다. 점심 사주라.’
메시지를 보내놓고 오빠가 뭐라고 답할지 벌써 웃음이 난다.
‘까똑’
‘이야~당당하게 밥 사달라카네. 내 태워가라. 니 차 타고 가자.’
사무실 밑에서 기다리니 오빠가 곧 내려온다.
“뭐 묵고 싶노? 오랜만에 나왔는데 맛있는 거 무라. 사주께.”
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어차피 지갑도 안 갖고 왔다.”
옛날엔 햄버거, 피자, 스파게티로 삼시세끼를 먹어도 괜찮았는데 이제 밥이 좋다.
게다가 오늘은 아침도 안 먹었으니 빈속에 밀가루를 넣을 순 없지.
사무실 근처 해물밥상 집으로 간다.
안내해주는 자리로 가 앉자마자 가격을 먼저 쫙 훑어본다.
멍게비빔밥 12,000원, 모둠 한상 16,000원, 특상 18,000원.
가성비도 따지고 맛도 놓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뭘 시켰나 옆 테이블도 한번 둘러보는데 오빠 전화가 울린다.
“예. 오늘은 안 되겠네예. 막내가 오랜만에 나와 가지고 밥 사준다꼬예.”
누군가 점심 먹자고 전화를 했나보다.
오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항상 막내라고 칭한다.
나는 40살 귀여운 막내다.
통화를 끊은 오빠는 메뉴판을 가져간다.
“특상 무라. 뭐 고민하는 척하고 있노.”
오빠가 특상을 주문하고 나는 시원한 물을 컵 두 개에 나눠 따른다.
“꾹꾹 눌러 따라봐라. 얻어 묵는 기 이런 거라도 해야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싸우는 줄 알지만 이게 다 재미다.
어릴 때부터 나는 오빠와 쿵짝이 잘 맞았다.
오빠는 세 살 터울인 나를 친구들 노는 자리에도 많이 데려갔고, 학생 때부터 참 살뜰하게 챙겨줬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오빠는 일찍 사회생활을 했는데, 언제든지 간식거리를 잔뜩 사서 자율학습을 마친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세상에서 우리 오빠가 제일 재밌었다.
놀리고 울린 적도 많았지만 놀다가 생긴 일이었고, 내가 울어제끼면 결국 다 오빠가 양보했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은 이상하다고 했다.
사춘기 땐 오빠 냄새도 싫어 오빠 방에 들어가는 것도 꺼려진다는데 우리는 자라는 내내는 물론이고, 둘 나이를 합치면 90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잘 통해서 좋다.
남편도 처음에 우리를 참 신기해했다.
보통 어릴 때 친하게 지내다가도 가정을 이루면 서서히 멀어지게 마련인 일반 남매 사이랑 다르다며 엄마 없이 서로 많이 의지하고 컸나보다 짐작 했었다.
오빠는 아빠처럼 큰 키에 길에서 만나면 돌아다 볼 만큼 커다란 덩치다.
사회인 야구를 하느라 얼굴도 새카맣고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팔에는 긴 상처까지 주욱 그어져 무섭게 생겼다.
거기다 농담을 진담처럼 툭툭 던지니 오해하기도 쉽다.
하지만 오빠는 순한 사람, 약아빠진 나랑은 다르다.
다툼, 분쟁 같은 문제적 상황을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맞다 싶어도 시끄러워지는 게 싫고, 골치 아파지는 게 싫어서 넘어가는 일이 많다.
한 번은 식당에서 옆 테이블이 너무 시끄러워 참을성 없는 내가 못 참고 한 마디 하려는데 오빠는
“우리가 얼른 묵고 나가자.”
화나면 테이블을 뒤집어엎게 생겨서는 의외의 평화주의자다.
학교 때는 아빠가 유도, 조정 등 운동을 시켰었는데 저런 순한 성격에 무슨 승부근성이 있었겠는가.
지고 못사는 아빠는 항상 그런 오빠를 못마땅해 했다.
졸업 후에는 아빠 회사에 정착했다.
정착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다.
아빠가 추천하는 다른 회사에 근무하기도 하고, 장사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아빠의 닦달과 성화였고 오빠는 선택한 적이 없다.
오빠는 아빠와 상명하복 관계다.
불복하려면 대립해야 하지만 오빠는 평화주의자였고 아빠는 불도저.
타협이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빠는 아버지, 나는 아빠라 부르는 사람.
호칭이 다른 만큼 그 차이는 컸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 주장만 하는 사람.
주변사람 신경 쓰지 않고 화나면 크게 호통치는 사람.
언제나 자기 방식을 고집하고, 안 되면 힘으로 누르는 사람.
그래서 오빠는 언제든 전화기에 아버지라고 뜨면 긴장 됐다.
어려운 아버지 그 자체.
오빠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미운 적도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식은 나이 들고 아버지는 늙어간다.
동그랗게 뜨고 있던 어린 아들의 눈이 반쯤 감기고 같은 나이를 살아가는 남자로서 반쯤 눈을 뜬 걸까?
나의 아빠와 오빠의 아버지가 만났다.
이제 아버지는 불쌍하고 고맙다.
오빤 아버지만큼 살 자신도 없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사업을 이끈 노장이고, 혼내놓고 마음 아파 어쩔 줄을 모르는 마음 약한 사람이다.
가족을 부족한 것 없이 살게 해준 사람이고, 나이 들어 외롭게 사는 안쓰러운 사람이다.
어느 날인가 우리 집에서 다 같이 술을 마시다 오빠는 그렇게 눈물과 함께 속마음을 뚝뚝 쏟았다.
물론 아직도 오빠는 아빠가 어렵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딸 같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설명해보자면
사랑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서로 모른 척 해주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중간에 끼워 최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으려고 하는...그러면서 또 안 보이는 곳에서는 서로가 엄청 챙기는?
아...설명할 수록 모르겠다.
여튼 옆에서 보면 둘이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