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3
3화. 아빠의 냉장고
10시 10분.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거실에 쫙 깔린 레고 피스들을 정리한다.
치워봤자 둘째가 돌아오면 다시 다 쏟아놓고 놀 거다.
마음 같아선 다 버리고 싶은데 비싸게 주고 산 거라 그러지도 못한다.
'까똑‘
아빠다.
‘와서 은대구 가져가시오. 사과도 한 봉지 갖고 가고.’
나는 크게 오케이를 외치는 이모티콘을 눌러 놓고 서둘러 차 키를 챙긴다.
삑, 삑, 삑, 삑
아빠는 출근하고 빈 집이다.
잘 마른 싱크대엔 행주가 얌전히 놓여있고 냄비엔 아침으로 먹다 남은 아빠의 생선찌개가 있다.
뚜껑을 열자마자 간이 잘 베인 매콤한 생선 냄새에 밥 생각이 간절하다.
‘아, 내가 아침을 안 먹었구나.’
바닥에 떨어진 쿠션을 소파에 얹어놓고 안방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이불이 가지런하다.
베란다로 가보니 빨래가 널려있다.
수건 4장, 발가락 양말들, 빨간 티셔츠, 커다란 사각팬티 4장.
수건 한 장을 만져보니 포슬포슬 잘 말라 차곡차곡 걷어 옆구리에 낀다.
올 때마다는 아니지만 아빠 집에 들를 때면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둘러보게 된다. 70대 남자가 혼자 사니 신경이 쓰인다.
소파에 앉아 수건 한 장을 무릎에 놓고 티브이를 켰다.
홈쇼핑 채널이다.
아빠는 쇼핑을 좋아한다.
아울렛에서 세일 상품을 사는 것도 좋아하고, 틈만 나면 홈쇼핑을 둘러본다. 어느 때고 불쑥 전화를 걸어
“어, 아울렛 왔다. 문자에 사진 보내 놨다. 함 봐라. 니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 이거는 키가 커야 되는 옷이거든.”
“홈쇼핑 틀어 봐라. 코트 멋~진거 17만9천원에 파는데, 할래?”
“곰탕 10팩에 2만9천8백원인데, 맛있겠네. 너거 이거 물래? 만둣국 할 때 이거 있으면 직이준다.”
나는 리모컨을 들어 요즘 뜨는 예능 채널로 바꾸고 신경 써서 발가락 양말의 짝을 맞춘다.
짝지끼리 둥글게 말아놓아야 신을 때 편하다.
이제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 넷째 선반에 흑미밥 덩이들이 봉지봉지 놓여있다.
지난주에 가져다드린 시어머니 물김치통도 들어본다.
무거운 걸 보니 드시지 않은 것 같은데, 투명한 통이 아니라 잊은 걸까?
맥주가 서너 캔 보여 꺼낸다.
냉동실을 연다.
아빠의 냉동실은 복잡하다.
아빠의 쇼핑 코스 1번은 아울렛도 홈쇼핑도 아니고 생선 공판장인 까닭이다.
위 칸에 찧어 놓은 마늘이 납작하게 얼었고, 오늘 가져가라던 은대구들은 대여섯 마리씩 묶여 3층으로 쌓였다.
둘째 칸엔 뼈째 회로 썰어먹는 병어도 있고, 몸 가운데 큰 점 있는 달고기도 여럿이다.
중간 서랍엔 낙지인지 문어인지 서너 봉지고, 민어 토막도 한번 먹을 만큼씩 야무지게 싸 놨다.
아래 서랍을 열어보니 오징어를 몸통 따로 다리 따로 묶어 두세 봉지, 한치, 갑오징어도 가득하다.
제일 아래 칸에는 주먹 크기로 잘라놓은 소 부채살, 돼지 목살, 삼겹살, 삶은 소 양도 있다.
최근엔 냉동고를 하나 더 사셨는데 깐새우, 간고등어, 바다장어, 물가자미, 청어 등이 7단 선반 가득히 꽁꽁 얼어있다.
귀찮지도 않을까?
공판장에서는 생선을 자루나 박스로 팔기 때문에 비늘 쳐 머리, 꼬리 자르고 내장 손질에 헹구기까지 길면 두 시간도 걸린다.
부엌에 비린내도 베이고 음식 쓰레기도 한 가득이라 보통 사람이라면 질려버리고 말 일이다.
나는 은대구 3봉지와 소 양 한 봉지를 꺼낸다.
우리 집 냉동실을 떠올려보니 이것들 들어갈 자리 밖에 없다.
아빠 집 냉동실과 내용물도 똑같다.
세탁실에 모아놓은 검정봉지들 중에 알맞은 걸 골라 은대구를 담으며 전화를 건다.
“아빠, 은대구 세 봉지랑 소 양 챙겼고, 캔 맥주 다 갖고 간데이.”
“은대구 더 가지고 가라. 오징어도 몇 봉지 넣고, 병어도 가져가서 박서방 썰어 줘. 초장이랑 양파 넣고, 배 좀 넣으면 더 맛있지. 너거 집에 배 있나? 없으면 아빠 세탁기 위에 있다 갖고 가. 식초 약간, 깨소금, 참기름 드음뿍 해야 맛있다.”
아빠는 전화로 병어를 무친다.
“아니, 아니, 우리 냉장고에도 많아. 먹고 또 가지고 갈게. 양 삶은 거는 내가 좋아해서 맥주랑 마실라고 더 챙겼지.”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이 가 가라! 퍼뜩퍼뜩 무야 또 사러가지. 나는 그 재민데. 한 다라이 사서 대구 교수님도 보내 드리고, 서울에도 보내주고 니도 주고 을매나 좋노? 마트에는 그런 생선은 팔지도 않는다. 어, 전화 들어온다. 끊어라.”
생선 좀 그만 좀 사라고, 다 먹고 또 사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나는 웃음이 난다.
나는 파파걸이다.
내 나이 마흔이니 파파우먼이라고 해야겠다.
큰 체격으로 십여 년 조기축구를 했던 아빠는 발목이 좋지 않아 발 한 쪽을 살짝 전다.
하지만 아직도 새벽 헬스에 열성이고 빵빵하게 배 나온 70대 치곤 옷 태가 좋다.
낚시가 좋아 작은 요트를 산 후로는 1년 내내 요트장에 살다시피 하는데 그 덕에 몸은 물론 얼굴도 새카맣다.
얼굴엔 볼을 다 덮는 은색 수염이 가득한데 검은 얼굴빛과 꽤나 잘 어울려 보기 좋다.
아빤 별난 사람이다.
할머니 말로는 젊어서부터 새 청바지를 사서는 일부러 시멘트바닥에 문질러 찢어 입고, 태권도, 복싱 등 운동도 많이 했단다.
어딜 가나 대장을 해야 했고, 목소리도 크고 고집은 말도 못한다,
성격도 불같아 화가 나면 어마어마하다.
아닌 건 아니고, 맞는 건 또 죽어도 맞고, 손해를 보더라도 나 좋으면 하고, 나 싫으면 그만이다.
강한 성격으로 주변사람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하고, 상처 준 적도 많을 거다.
별난 성격의 아빠가 나는 좋다.
나는 아빠 덕에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게 컸고, 불벼락 같은 호통을 들은 적도, 매 맞은 적도 없다.
아빠는 밖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와 인상 찌푸리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사업에 위기도 있었고, 사람한테 속아 돈도 많이 잃어봤고, 부부사이에 파경을 맞아 일상이 망가지는 등 정말 온갖 일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풀 죽거나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빠가 그랬다면 어린 내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아빠는 다 괜찮다고 했다. 자신 있다고.
“아빠 모르나? 괜찮다. 니는 그런 거 신경 쓸 거 없네요.”
하며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배우자로서 아빠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 나는 모른다.
또 사회생활에서 아빠를 만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아빠가 시원시원하고 멋있다며 따르는 사람들도 있고, 고집 세서 말이 안 통한다고 고개 젓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봐서 아빠가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저 누구에게 어떤 평가를 받든 나에게 좋은 아빠라는 것 일 뿐.
나는 다정한 아빠와 추억이 많다.
중학교 시절 피구를 하다 손가락이 부러졌는데, 아빠는 매일 하교하는 나를 기다렸다가 병원에 데려갔다.
다 큰 딸의 통원치료를 매일 따라다녀 주는 아빠는 주변에도 흔치 않았다.
고등학생 땐 내 친구들 사이에서 아빠의 음식솜씨가 유명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친구들을 집에 불러 감자전은 해 먹인 적이 있었는데, 늦은 밤까지 책상에 붙들려 있던 여고생들에게는 환상의 야식이었다.
강판에 감자를 갈아 돼지고기도 막 삐져 넣고 후추, 양파 넉넉히 해서 도톰하게 부쳐낸다.
여기에 식초간장을 곁들이면 정말 딱 떨어지는 맛이었다.
이 감자전은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친구들 입에 오르내렸다.
고3, 나는 대학을 특차로 합격하고 아빠랑 동네 가게들을 돌며 축하주를 마셨다.
들르는 가게마다 딸이랑 참 보기 좋다는 사람들의 칭찬에 아빠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날 나는 맥주를 제법 마셨는데, 아빠는 딸래미가 날 닮아 술도 취하지 않는다며 껄껄 웃었다.
그 날 우리 부녀는 한껏 들떴었다.
나에게 복잡한 가정사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살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