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2

2화 평일 아침

by 연영


7시 40분.

“안녕히 주무셔었~어요.”


둘째가 일어났다.

언제나 제일 먼저 일어나는 둘째는 리모컨을 꼭 잡고 소파에 눕는다.

녹음버튼을 누르더니 조그만 입으로


“어린이 채널.”


티브이에선 알록달록 어린이 채널을 뷔페처럼 차려놓는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은 남편은 둘째를 부른다.


“엄마가 계란말이랑 소고기 조림해놨네.”


나는 금방 뜬 밥에 입을 데일까 그릇을 만지며 온도를 체크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둘째가 입꼬리를 올리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진짜야?”


식탁에 앉자마자 반질반질 윤기나는 소고기 조림을 연신 제 그릇으로 옮겨 담는다.

나는 첫째에게 소리친다.


“맛있는 거 다 없어진다.”


아침잠이 많은 첫째는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눈도 바로 뜨지 못하고 방에서 나온다.

남매가 어쩜 이리도 다른지 하나는 너무 재고, 하나는 너무 느리다.


첫째가 식탁에 앉자 남편은 식사를 마치고 도시락을 챙긴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 인사를 한다.

참 성실한 남편이지만 회사는 가기 싫은가보다.

끌려간다고 해야 하려냐? 한참이나 거울을 보고 발을 떼지 않는다.

나는 옷도 한번 털어주고, 회사 가지 말고 나랑 놀자는 둥 안아 달라는 둥 양양 거린다.

남편이 내 등을 슬쩍 쓰다듬더니 배시시 웃으며 현관을 나선다.


티브이에선 분홍색 돼지 ‘페파’가 동생 ‘죠지’와 박물관 견학을 가고 우리 집 아이들 밥은 도무지 줄지를 않는다.

화면을 툭 꺼버리자 둘째가 입을 삐죽삐죽.

이제 애들 옷을 챙겨 내 놓고 나도 세수를 하러 간다.

찬 물을 대충 얼굴에 문지르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묶었다.

로션을 바르고 나와 보니 던져진 옷은 그대로고 아이들은 다시 티브이 속이다.

내 목소리가 커진다.


옷이 마음에 안 든다.

양말이 불편하다.

머리모양이 싫다.

학교는 왜 가야하냐.

성질 긁는 찰나들을 잘 버텼다.


어제는 못 참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었는데 오늘은 벌써 8시 15분이라 무시해버린다.

시간을 겨우 맞춰 아이들을 차에 태운다.

도보로 10분 거리도 못 되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라 데려다 준다.

남편은 게을러진다고 애들끼리 걸어가게 하라지만 보내놓고 내내 불안해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느니 같이 가는 게 나았다.


아이들을 보내고 집에 오니 빈 그릇 가득한 식탁과 발 디딜 틈 없는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까똑.’


아빠다. 아침으로 먹은 생선찌개와 잡곡밥, 양파지 사진을 보냈다.

아빠는 내가 4학년 때 이혼했다.

엄마는 노름방을 끊지 못했고, 아빠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누가누가 잘못했나.


이혼 후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공정한 판사가 될 수 없다.

엄마는 자식 셋을 키울 수 없었고. 나는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아빠에겐 그 후로도 몇몇 여자들이 왔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갓 마흔을 넘긴 이혼남은 너무 젊다.

이혼을 마무리 하기 전부터 만나온 여자는 우리 삼남매에게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그녀는 칼같은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뚜렷한 규칙이 있었고, 그렇게 키워지지 않았던 우리 삼남매는 매사 그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매를 들거나 밥을 굶기는 등 옛날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새엄마는 물론 아니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쳤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참 힘들게 했다.

아빠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그녀의 기분을 살피기에 바빴다.

히스테릭한 면이 많았고 그렇게 발동이 걸리면 다시 아빠와 고성이 오가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그녀가 집에 오기 전이면 긴장했다.

오늘은 또 무엇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 것인가?

이번엔 또 며칠이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을까?

그녀는 가혹했다.


부모의 이혼을 겪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하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에게도 두고 온 아이들이 있었다.


‘내 새끼들 두고 와서 남의 아이 키우며 내가 여기서 뭐하는 짓인가.’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지금, 나는 그녀가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행복해 질 수가 없는 선택.

그녀가 한 선택을 그런 것이었다.

그녀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한 아빠도 역시 행복해질 수 없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녀의 여인천하도 대학시절 아빠의 이혼으로 끝이 났으니 말이다.


속이 시원했다.

마음이 편했다.

해방감이었다.


당시 나는 그녀와의 불화로 할머니댁에 나가 있었고, 아빠에게는 제3의 여자가 있었다.

이혼의 사유는 아름답지 않았지만 아빠가 이혼해줘서 고마웠다.

새로 만난 그 여자가 내 인생의 구원자로 보일 정도로.


아빠의 첫 번째 이혼으로 우리 남매는 엄마 자격이 없었던 친모와 이별 할 수 있었고, 두 번째 이혼으로는 히스테릭한 계모와 인연을 끊을 수 있었다.

너무 적절하지 않은가?


백퍼센트 내 입장에서만 볼 때 다시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아빠의 이혼들에 대찬성이다.

아빠의 전처들이 이가 갈리게 아빠를 원망하고, 또 아빠가 그 이혼들로 불행했다고 할 지라도 나는 두 이혼 모두 잘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혼자가 된 아빠에게 몇몇의 인연이 더 있었겠지만 지금 아빠는 혼자다.

혼자서 잘 지내주는 아빠가 안쓰럽고, 고맙고, 미안하다.


계모와는 연락한 적이 없고, 엄마는 몇 번 만나보긴 했다.

대학생이 된 후 연락이 닿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자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전화가 걸려 왔는데 손님을 만나고 있다고 얼버무리며 얼른 끊었다.

내가 손님인가?

“여전히 거짓말쟁이, 여전히. 여전히.”


굳이 10여년 전에 헤어진 딸을 만나고 있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난 싫었다.

뭔가 숨기는 사람만이 보이는 그 행태가 어른이 되어버린 내 눈에 너무나 잘 보였다.


작년엔, 어느 주민센터에서 우편물을 받았다.

그것은 엄마의 이름이 쓰인 서류였다.

주민센터에서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자가 자식과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음을 확인해야 했고, 나는 물론이고 오빠와 언니에게도 이 서류를 보내는 절차가 필요했을 거다.


내 속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것이 올라왔다.

엄마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엄마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그렇다고 엄마가 걱정 되지도 않았다.


‘아, 여전히 이러고 사는구나.’


그것뿐이었다. 그 옛날 노름방에서 다쳐 울던 날에 대한 복수였을까?

나는 내가 불쌍했지, 엄마가 불쌍하진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엄마의 인생에 쯧쯧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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