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호 앞이다.
난 여기가 싫다.
열리지 않는 문에 조급증이 난 엄마는 연신 초인종을 괴롭힌다.
나는 속으로 빈다.
‘열리지 마라. 열리지 마라. 열리지 마라.’
하지만 곧 문이 열리고 밤색 홈드레스를 입은 아줌마가 나온다.
“은지 유치원 갔다왔나보네? 어서 와.”
엄마는 우둑하니 서 있는 내 손을 잡아끈다.
나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밀어닥치는 매운 담배냄새에 코를 틀어막지만 엄마는 신발을 벗으면서도 안을 살펴보기 바쁘다.
여긴 노름방이다.
여느 가정집처럼 보이는 현관문을 열면 방마다 깔린 화투판에 너댓 명이 둘러앉아 패를 던져대는 노름방.
나는 유치원을 마치면 엄마와 이곳에 온다.
내가 하원하기까지 기다리지 못한 엄마가 먼저 노름방에 가버려 커다란 거실 쇼파에서 혼자 울다 잠든 날도 많았다.
“은지엄마, 여기 자리 났다.”
엄마는 반색하며 일어선다.
나도 따라나서지만 908호 아줌마는 나에게 차가운 요구르트 한 병을 주곤 멀찍이 가라며 손을 휘젓는다.
난 티브이를 보거나 화투치는 어른들을 구경했다.
광을 판다며 패 한 장에 천 원씩 걷어가는 아저씨.
화투판 밑에 깔아놓은 본전이 모자르다며 신경질 내는 언니.
다 잃었다면서도 자리를 못 뜨는 아줌마.
점수 계산이 잘못 됐다며 노발대발하는 아저씨들.
나는 엄마가 들어간 방을 빼꼼 들여다 본다.
"아유, 은지엄마 자리 잘 잡았네. 패 붙는 거 봐라."
엄마가 진녹색 화투판으로 패를 던질 때마다 눈 화장을 무섭게 한 아줌마가 참견이다.
하지만 엄마는 함께 온 어린 딸도, 훈수 두는 옆자리 아줌마도 전혀 보이지 않는 듯 하다.
티브이 구경도, 사람구경도 시들하다.
이제 거실 바닥에 누워 카펫의 복잡한 무늬를 손가락으로 따라간다.
구불구불 또 구불구불 또 구불구불.
손톱에 하얀 먼지가 붙고 이내 어지럽다.
‘까똑’
아침 6시.
친정 아빠의 메시지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몸이 피곤하면 노름방 꿈을 꾼다.
가장 돌아가기 싫은 순간으로 던져지는 거다.
내 나이 마흔에도 담배연기 자욱한 노름방 한 구석 7살 유치원생으로.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착즙주스 사진이다.
아빠는 오늘도 당근이랑 사과를 갈아 한 컵 마시고 헬스장에 가나보다.
옆에 누운 남편은 깨벗은 채 이불을 둘둘 싸맸다.
눈을 감고는 있지만 메시지 소리에 깬 것 같다.
가까이 누우면 내 팔을 당겨 끌어다가 안고 허벅다리를 허리에 얹을 거다.
그 무게감도 좋지만 오늘 아침은 가십 뉴스나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
휴대폰 불빛에 눈이 부신지 남편이 돌아눕는다
이십대 중반에 남편과 결혼해 13년을 살았다.
하지만 정신연령이라는 것은 세월에 진도 맞춰 착착 따라가는 게 아니더라.
아무리 잘 쳐줘도 나는 겨우 20대 초반 정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스럽고 미숙한 감정들이 무수히 밀려와 나를 후루룩 휩쓸어 간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나에게 남편은 꽤 잘 맞다.
그는 과민반응 하지도 ,무신경하지도 않다.
솔직히 난 이렇게 편안한 부부 사이에서 자라지 않았다. 소리치고, 부수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날이면 불안함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들었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엄마와 커다랗게 고함치는 아빠는 괴수영화에서 싸우는 괴물들 같았다.
나는 이불 속에서 오빠 손을 꼭 잡아보지만 오빠도 그저 내 손을 더 꼭 잡아 줄 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할퀴고 상처 주느라 두, 세 살 터울의 삼남매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엄마,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았지만 실은 20대 정리 안 된 감정의 파도 속에서 목만 겨우 내밀고 허우적거렸던 거다.
시간이 간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는 다고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7시.
아침을 하러 일어난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 해먹든 사먹든 아침을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규칙에 예민한 편이고 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육아에 있어서도 이런 성격은 스스로를 들볶는다.
나도 알고는 있다.
아침은 보통 하얀 죽을 차지게 끓여 구운 김, 양념간장과 함께 먹는다.
만들기도 먹기도 쉽다.
오징어탕국이나 미역국, 북엇국 등 국물을 끓여 시원한 깍두기랑 먹기도 한다.
오늘처럼 남편 회사가 바쁜 날에는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는데 그것도 뭐 어려울 게 없다.
계란을 풀어 소금을 좀 넣고 프라이팬에 붓는다.
익기 전에 말아주면 통통하게 부풀어 먹음직하다.
계란말이는 한 김 식혀두고 얼려 둔 소 부채살을 살짝 녹인다.
얼은 고기를 서억서억 썰어 얕은 팬에 담고 간장 한번 휘익, 물엿 두 번 휘익휘익.
사실 마늘, 후추 이런 거 안 넣어도 국물 없이 자박하게 졸이면 짭잘하고 달달한 것이 밥도둑이다.
참기름, 통깨를 넣고 뒤적이는데 밥에 김이 오른다.
얼른 오이를 무쳐 아침상에 놓고 차곡차곡 도시락도 채운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소담하게 싸 놓은 도시락에 내심 뿌듯함이 솟는다.
내 초등학교 도시락은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벌이가 좋았기에 잘 싸간 날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휘발성이 강한 걸까? 나는 항상 다른 장면이 떠오른다.
엄마는 돈을 줬다.
점심시간이면 같은 학교에 다니던 오빠, 언니를 만나 매점 앞 늘어선 긴 줄 끝에 섰다.
그렇게 옆 사람 이야기도 잘 들리지 않는 소란스런 탁자 한 구석에서 나는 하얀 소면을 서투른 젓가락질로 건져댔다.
도시락 말고 매점에서 국수나 떡볶이를 사먹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난 싫었다.
모처럼의 별미가 아니었으니까.
학교 가는 아이 셋에게 눈만 겨우 뜨고 천원짜리는 내미는 엄마 얼굴이 겹치며 괜히 짜증스러웠다.
엄마는 노름쟁이었다. 거기다 타고 난 거짓말쟁이.
정도 많고 인심이 좋아 주변사람들에게 잘 했다는데 온갖 거짓말로 돈을 빌리곤 갚지 못해 결국 그런 인간관계도 오래 가지 못 했다.
돈을 갚으라며 집으로 찾아온 엄마친구가 이전과는 다르게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봐서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엄마에게 선물로 줬던 커다란 항아리를 다시 들고 우리집을 나설 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는 나를 내려다 보던 눈빛도 참 낯설었다.
막내여서일까? 난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너는 정말 아꼈었다고, 그건 기억해야한다고 숱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엄마에 대해 가진 기억들은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
초등학교 6년 담임선생님 이름까지 줄줄 기억하는 오빠에 비하면 나는 기억상실이라고 할 만큼 그 때의 기억이 없다. 흐릿하게 몇 장면 뿐.
대학시절 심리학 수업에서 ‘괴로운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지웠을 수 있다. 일종의 자기 방어다’라는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내 뇌가 그 기억을 지워줬다는 걸 알고 스스로가 기특했다.
한 번은 내가 노름방에서 색색의 바늘쌈을 가지고 놀다가 바늘에 손목을 쿡 찔렸다.
자지러지게 우는 나를 엄마는 화투판에 앉은 채로 등에 업었다.
아니 내가 매달렸다.
나는 엄마 목을 감싸고 서럽게 울었다.
손목이 따가워서인지 담배연기에 눈이 매워서인지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엄마의 한 손은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대여섯 장의 화투장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내 눈에는 진녹색 화투판과 빨강, 노랑 밉살스런 화투장만이 어그러졌다.
정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