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과 아이
언제나 철없을 내 안의 나에게 읽어주는 동화
나방은 길 건너 아파트가 궁금했어요.
이곳 야산과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저 곳에선 꽤나 오랫동안 시끄럽고, 먼지 나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저렇게 커다란 아파트가 생겼지 뭐예요.
지난 겨울만해도 나방은 저렇게나 먼 거리를 날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봄이 시작될 무렵 6차선 도로 가운데에 꽝꽝나무가 줄줄이 심기면서 기회가 생겼지요.
꽝꽝나무도 꽃을 피워 꿀 냄새가 야산에 진동했어요.
‘그래, 저기까지 날아가 꿀을 먹고 좀 쉬었다가 다시 아파트까지 날아가 봐야겠다.’
결심을 하고 기다렸어요.
쌩쌩 무서운 자동차들이 뜸해질 즈음, 나방은 날아올랐어요.
꽝꽝나무 주변에는 벌들이 꿀 따기에 바빴지만 나방은 겨우 목만 축이고 다시 기회를 봐야했어요.
오늘은 꿀 따러 온 게 아니니까요.
야산에서 태어나 사람 사는 곳을 처음 본 나방은 모든 것이 새로웠어요.
차가 드나들 때마다 입구에 달린 커다란 차단기 막대가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끝은 알 수 없는 높이까지 유리창들이 빼곡하네요.
1층에선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나오고, 또 들어갔어요.
나방도 들어가고 싶어졌죠.
유리문으로 날아간 나방은 어리둥절했어요.
‘문이 닫혔어.’
나방은 기다렸어요.
한참을 기다렸어요.
그때 아파트 입구에서 노오란 학원차 한 대가 섰어요.
남색 패딩점퍼에 파란 가방을 맨 아이가 차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이쪽으로 걸어오네요.
나방은 몸을 움츠렸어요.
나방을 본 건지 못 본 건지 아이는 무심히 터치패드를 눌렀어요.
‘칠, 공, 팔.’
‘비밀번호를 눌러주세요.’
‘삑, 삑, 삑, 삑.’
‘잘못 누르셨습니다.’
아이는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누릅니다.
“아이, 진짜...”
‘칠, 공, 팔.’
‘비밀번호를 눌러주세요.’
‘삑, 삑, 삑, 삑.’
‘문이 열립니다.’
아이는 열린 유리문으로 들어가 우편함을 살핍니다.
나방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아이를 따라 들어가네요.
그런데 또 다른 닫힌 문이 나타났어요.
바로 엘리베이터.
당황한 나방은 아이 가방 위에 내려앉았어요.
하지만 아이는 익숙한 듯 버튼을 눌러두고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렸어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이는 곧 7층 버튼은 누릅니다.
가방 위에서 지켜보던 나방은 사방을 비추는 거울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7층입니다'
문이 열리자 나방은 정말 놀라버렸어요.
또 다른 문이 나타났지 뭐예요!
이번에도 아이가 능숙하게 문을 열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젠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야산으로 다시 돌아가지?’
아이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어요.
집엔 아무도 없었지만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공기와 달콤한 냄새가 훅 하고 밀려왔어요.
나방은 천장에 붙어 아이를 지켜봤어요.
아이는 어항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점퍼를 벗어 소파로 툭 던졌어요.
마스크는 식탁에 올려두고 옷도 아침에 벗어뒀던 수면잠옷으로 갈아입네요.
이제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나 했는데 다시 쌩 나와서 소파 위 리모컨을 들어 어린이 채널을 틀어둬요.
조용하던 거실이 금새 시끌시끌.
화장실로 간 아이는 거품을 두어 번 손에 덜어 비벼대다 씻어내고 곧장 식탁에 앉습니다.
식탁에 앉으니 부엌 쪽으로 살짝 틀어진 거실 티비가 더 잘 보이네요.
엄마가 두고 간 식빵과 꿀이 아이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어요.
‘전지렌지에 15초 데워먹어.’
아이는 접시 위 쪽지를 치우고 전자렌지에 식빵을 넣어요.
30초로 세팅되었던 초시계가 15초로 바뀌자 얼른 문을 열어 식빵을 꺼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어요.
이제 꿀을 거꾸로 세워 식빵 위로 주르륵 부어요.
더 많이. 더 많이.
미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던 꿀이 식탁에 후두둑 떨어지고 나방은 눈이 확 떠졌어요.
‘음, 저거야. 저걸 먹어야겠다.’
아이는 티비를 보며 꿀 발린 식빵을 먹기 시작했어요.
빵을 들어 올릴 때마다 접시 위에도 식탁 위에도 꿀이 뚝뚝 떨어졌고 손가락에도 가득 흘렀어요.
한 조각을 다 먹고 나자 아이는 끈적해진 손을 물티슈로 닦고 다시 거실로 갔어요.
구석에 자루 가득 담긴 레고를 쏟아내고 티비 소리를 들으며 무언가 만들기 시작하네요.
아이가 레고 놀이를 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식탁에 앉은 나방은 꿀을 먹기 시작했어요.
‘우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
한참이나 식탁을 돌아다니며 꿀을 마신 나방은 삑삑 하는 현관문 소리에 놀라 다시 천장으로 날아올랐어요.
아이가 반색을 하며 현관으로 뛰어갑니다.
“누나야? 어! 엄마다. 일찍 왔네.”
아이는 엄마에게 다가가 활짝 웃어보였어요.
엄마는 아이 등을 톡톡 두드려주고 눈으로는 식탁을 살폈어요.
“식빵 다 먹었네. 데워서 따뜻하게 먹었어?”
아이는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했어요.
“응, 엄마가 써 놓은 대로 딱 15초에 꺼냈어.”
엄마는 가방을 내려놓고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어요.
“오늘은 좀 덥다. 그치? 벌써 여름이 다 돼가니까 그럴 때도 됐어.”
엄마는 부엌 창문을 모두 열고 거실로 갔어요.
거실 커튼을 활짝 젖히고 커다란 문도 열었어요.
마주보는 두 창이 열리자 집안이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찼네요.
나방은 날아올랐어요.
그건 야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거든요.
나방은 이 바람을 향해 가야만 했어요.
꿀이 정말 맛있었지만 익숙한 내 집으로 가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열심히 날아간 나방은 방충망에 척 붙고 말았어요.
“엄마, 나방이이야. 나방. 우리 집에 나방 들어왔어.”
아이는 무서운 듯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로 올라갔어요.
엄마는 식탁에서 휴지를 한 장 뽑아 나방 쪽으로 걸어갔어요.
“안돼! 엄마, 죽이지 마. 보내줘. 보내줘. 나방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
엄마는 아이가 귀여워 웃음이 났어요.
“그래? 잠깐 놀러 나온 걸까? 집에 안 가면 나방 엄마가 너무 슬프겠네.”
엄마는 방충망을 열고 살짝 흔들어보았어요.
깜짝 놀란 나방은 바람을 따라 무사히 나갔지요.
“우와. 나갔다. 엄마 빨리 닫아. 다시 들어올라.”
아직도 쿠션을 꼭 껴안은 아이가 다리를 파닥거리며 재촉합니다.
밖으로 나온 나방은 쉬지 않고 날았어요.
꽝꽝나무 숲도, 쌩쌩 달리는 자동차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그저 앞으로, 앞으로만 날아갔어요.
(초등3학년 둘째가 자기 전 들려준 이야기를 각색해 보았습니다. 나방을 보내줄지 말지 열심히 고민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