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잠깐 내렸던 소나기는 한껏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치솟은 습도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렸다. 찜통 속 만두가 이런 느낌일까?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 앞에서 숨을 고르며 집 안에 아무도 없기를 기도했다.
“띠띠 띠띠 띠띠딕 디리링-”
도어록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현관에 아버지 신발이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밝고 환한 집이 나를 반겨주었다. 만 30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구매한 아파트. 남동향의 최상층 집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부드러운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그런데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발코니에 놔둔 음식물 쓰레기 통에서 가스가 새어 나온 모양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앞뒤 발코니 문을 열어 맞바람이 통하게 했다. 이어서 진공청소기로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냈다. 머리부터 흐른 땀이 온몸을 적셨다. 뜨겁고 습한 공기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 속에서 청량함이 느껴졌다. 지금의 고민과 번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함께 씻겨 나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청소하며 집 안 구석구석 훑었다. 5년 전 반셀프 인테리어 하며 선택한 흰색 벽지에 곰팡이가 하나도 없었다. 별다른 관리도 해주지 않았는데 보송보송한 벽을 보자, 스무 살 아버지와 1.5룸에 살던 그때가 떠올랐다.
“네가 물 마시고 흘렸어? 닦아야지. 양말이 다 젖었잖아”
“아니요. 저는 물 안 마셨고 흘리지도 않았어요.”
“네가 아니면, 지금 바닥에 있는 물은 귀신이 흘린 거야?”
이사 후 맞은 첫 번째 겨울이었다. 아버지가 바닥에 고여있던 물을 밟았다. 어디서 흘러온 물일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건조대에 있던 양말을 건네고 걸레로 흐른 물을 훔쳤다. 그날 이후였다. 자고 일어나면 바닥에 물이 고여있었다.
'난방 배관이 터진 건가?'
생각하고 장판을 들춰봤지만 시멘트 바닥은 건조했다. 창틀에도 물이 새는 흔적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실리콘을 쏴서 틈새를 막았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맞이한 다음 날이었다.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물이 고여 있었다. 수원지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외부와 맞닿는 벽에 결로가 맺혔다. 부실한 단열 공사 때문일 것이다. 흘러내린 물은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방바닥의 기울기를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모였다.
“아버지 결로 때문에 물이 고인 거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내일 임대인에게 전화해 볼게요.”
“환기 자주 하고 있어? 음식 만들어 먹지? 환기 자주 해. 그거 네가 잘못 써서 그래”
“환기는 하루에 세 번 하는데요?”
“관리비랑 물값 잘 넣고 있지? 바빠서 일단 다음에 통화하자.”
여기에서도 내 탓이었다. 임대인에게 전화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환기를 자주 하라는 이야기뿐. 벽에 생긴 결로는 뒤돌아서면 다시 생겼다. 아침에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창문을 열었다. 점심 먹으러 집에 왔을 때 다시 창문을 열었다.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창문을 열었다. 그때마다 한기가 뼈마디를 파고들었지만 결로만 사라진다면 북극 한파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벽체를 타고 흐르는 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제가 일하는 동안에 벽을 닦아주실 수 있을까요?”
“허리 하고 어깨 아파서 못한다.”
“그러면 환기라도 좀 부탁드릴게요.”
“왜? 감기 걸리라고 굿이라도 하지?”
아버지께 부탁한 나의 불찰이었다. 사람보다 용적률과 건폐율이 우선인 건축물. 아무리 창문을 열어도 소용없었다. 바람이 들어오는 길 없이 한쪽으로만 창이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열어도 공기는 퇴근길 올림픽대로처럼 흐르지 못했다. 나도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무한한 반복에 지쳤다.
어느 순간부터 코가 간질간질했다. 가끔 크게 재채기도 하고 마른기침이 나왔다. 겨울이라 건조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결로가 생겨 물이 맺히던 자리에 곰팡이가 피었다. 퇴근 후 오밤중에 창문을 열었다. 코끝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줄도 모르고 락스를 뿌려가며 벽을 닦았다. 며칠을 반복했더니 벽지가 녹아버렸다. 곰팡이는 마치 살아있는 벌레 같았다. 바닥에서부터 벽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회색 콘크리트 벽은 까맣게 그러데이션으로 물들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주말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락스를 뿌리며 벽을 닦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옷깃을 여미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포기해라. 어차피 하나 하지 않나 똑같은 데 왜 쓸데없이 힘을 쓰지?”
“조금이라도 노력해야죠. 그리고 곰팡이가 건강에 안 좋잖아요.”
남동향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 너무 기뻤다. 2년간 준비해서 직접 해본 반셀프 인테리어. 더불어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밝게 햇살이 들어왔다. 마주 보는 창이 있어서 환기가 잘되는 내 집. 더 이상 곰팡이 걱정에 벽을 문지르지 않아도 되었었다.
“아버지 집에 너무 밝고 따뜻해서 좋지 않아요? 맞바람 때문에 환기도 잘 되고요.”
“글쎄다.”
당시에는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거겠지 치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와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기쁘면 세상이 기쁘다 생각하는 직관적 사고기의 자기중심화적 사고처럼. 내가 행복하니까 아버지도 행복할 거로 착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되짚어봤다. 그와 나는 같은 집에 살면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서 잠을 잘 때도 마음이 달랐다. 아버지와 함께 같이 살아야겠다는 나. 지금껏 참고 살았으니 남은 여생을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그. 아버지는 나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을 맞대고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처럼. 매일 꾸준히 쉼 없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지구 반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