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소녀와 하이킹

[Diary of Japan] 일본 산골마을 다이어리 #6

by 지후


여행은 신비한 힘이 있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게 만든다.



영화처럼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게 되거나,

낯선 이에게 오래된 비밀을 털어놓게 되거나,

머리보다는 마음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번 여행의 경우는 산을 타는 것이었다.
동네 뒷산도 올라가기 싫어하는 내가 말이다.



내가 있는 마을에는 ‘유후다케’라는 산이 있다.
북한산의 두 배쯤 되는 해발 1,580m의 산으로, 마을 어디에서나 그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막 장마가 시작되던 참이라 산 주위에 구름이 몰려들면 곧 비가 내릴 것을 알고, 마당에 널어둔 빨래를 서둘러 걷어들이곤 했다.


어느 날, 가게 앞에서 찌뿌둥한 몸을 풀고 있던 중,

오전 근무를 막 마친 뷸렛이 나왔다.


“지후, 마침 잘 됐다! 내일 애들이랑 하이킹 가는데 같이 갈래?”
“하이킹? 어디로?”


뷸렛은 웃으며 손을 뻗었다.
수십 번도 넘게 바라봤던 바로 그 산이었다.


“내일 아침 7시야. 잊지 마!”
생각 좀 해볼게—라는 대답을 할 틈도 없이 뷸렛은 이미 떠나버렸다.


땅보다 하늘에 더 가까워 보이는 저 산을 내가 오를 수 있을까. 지리산을 걸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이미 십 년도 넘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몸이 편하고 싶어서 마음이 불편한 걸 택하기는 싫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저 바라만보다 떠나기엔 산이 너무 아름다웠다.
힘들면 멈추면 그만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간식이라도 사갈까 해서 편의점에 들어섰더니, 아이들은 이미 온갖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우리는 각자 비닐봉지를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관광객도 없는 고요한 아침,

벤치 하나 없는 시골의 버스 정류장.
그곳에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덩그러니 서 있는 풍경이 묘하게 어색했다.



버스에 타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대체 저 아이들은 무슨 사이일까.’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사이예요.’

괜히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이킹 코스 입구에 도착하자 가까이서 본 산은 마을 아래에서 볼 때보다 훨씬 거대했다.



프랑스에서 온 뷸렛과 캐나다에서 온 브룩은 어릴 때부터 하이킹을 즐겨했던 터라 자연스레 선두로,

처음 등산을 해본다는 에밀리와 젠이 그 뒤를 이었다.
나이는 제일 많지만 체력은 제일 약한 나는 저만치 떨어져 낙오되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네 발로 기어갈 기세로 땅만 보고 걷던 나에게 젠이 다가왔다.
“지후 언니, 괜찮아? 내가 언니 뒤에서 걸을게.”

그 마음이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실상 얼굴에 흐르는 건 땀뿐이었다.



저 앞을 바라보니 이미 뷸렛은 날다람쥐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었고, 에밀리는 그 예쁜 곱슬머리가 땀에 젖어 녹아내리기 직전이었다.


그때 어디까지 간 건지 형체도 보이지 않는 브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우리 이제 5분의 1쯤 왔어—!”
충격적인 소식에 나는 산 정상에서나 외칠 법한 비명을 질렀다.


분노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일까. 나를 위해 속도를 맞춰주던 착한 젠을 버리고,
나는 미친 듯이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녹초가 된 에밀리를 제치고, 버섯을 구경하던 뷸렛을 제쳤다. 이내 우리를 기다리던 브룩까지 따라잡았다.



하지만 불처럼 타오른 힘은 금세 사그라들어 더 이상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등산의 괴로움은

빨리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시작된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목표는 정상일지언정,

목적은 그저 누군가와 함께 오르는 데 있었다.


어릴 적 비를 맞으며 4대 강 길을 걷고, 쌀과 반찬으로 가득한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등산은 레이스가 아니라 행진이라는 걸.


중학교 2학년,

학교에서 2주간 둘레길을 걷는 도보 여행을 했었다.


전교생이 조를 나눠, 마치 꼬리 잡기처럼 어제 다른 조가 걸었던 길을 오늘 우리가 따라 걷는 방식이었다.


하루에 20km씩 걸어야 하는 걸 즐거워하는 아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떠나야 했던 도보 여행은 대체로 부상과 싸움, 짜증과 눈물로 가득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의 편지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숙소에 도착하자 테이블 위에 작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안녕, 드디어 도착했구나. 오늘 그 언덕 말이야, 너무할 정도로 힘들지 않니?
아 참, 마을 회관 뒤에 냇가가 있으니까 한번 가봐. 그럼 살아서 보자.’


누가 누구에게 쓴 건지 이름은 없었지만,
삐뚤빼뚤한 글씨와 종이 한켠의 작은 그림을 보고 금세 누가 썼는지 짐작이 갔다. 그 아이가 바닥에 웅크려 편지를 쓰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우리는 편지에 적힌 냇가를 향해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냈다. 며칠 만에 찾아온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모두가 매일 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음 숙소에 도착하면 누군가 남겨둔 편지를 찾는 게 먼저였다.


길바닥에서 2주 동안 같은 반찬만 먹어도,
내리막길을 걷다 넘어져도,

편지만 읽으면 다 괜찮아졌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을 누군가 걸었다는 사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늘도 결국엔 어제가 된다는 믿음이 다시 나를 걷게 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는 지금 네 명의 낯선 아이들과 함께 정상 바로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암벽 하나만 넘으면 될 거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여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도, 포기도 아닌

완전한 만족에 의한 멈춤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녀오라 말하고 바위에 앉아 아침에 산 과자를 먹었다. 내 옆에는 철쭉처럼 자주색 꽃과, 열심히 꽃가루를 모으는 벌들이 함께 했다.


정상에 도착했을 그들을 기다리며,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믿었던 옛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걷던 그때의 나도.


이제서야 깨닫는다.

과거의 걸음이 지금의 나를 걷게 해 주었다는 걸.



지리산을 걷던 내가 강화도를,
강화도를 걷던 내가 서울을,
서울을 걷던 내가 유럽을,

그리고 지금 일본을 걷게 되었다.


함께 걸었던 그때를, 그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은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


어쩌면 나는 지금도

그때의 편지를 따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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