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일을 맡게 되는 순간들
회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주니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그 말이 꽤 좋게 들렸다. 나를 단순히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고, 조금 더 기대를 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주니어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가볍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나는 여전히 내가 주니어라는 걸 알고 있다. 처음 해보는 일도 많고, 어떤 판단을 내릴 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많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막상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도 자주 온다. 그건 단순히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니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나는 더 이상 주니어처럼 행동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 일을 요청했을 때, 그게 내 영역이 아니거나 처음 해보는 일일 때가 있다. 원래라면 “이건 제가 경험이 없어서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게 맞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게 된다. “네, 해보겠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못한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렇게 시작한 일들은 대부분 순탄하지 않다. 검색을 하고, 다른 사람 작업을 참고하고, 몇 번은 틀리고 나서야 겨우 방향이 잡힌다. 겉으로 보면 그냥 하나의 업무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꽤 많은 시행착오가 쌓인다.
아마 회사에서 말한 ‘주니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더 주도적으로 일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해결하고,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움직이라는 이야기. 그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느끼게 된다. 주니어에게 주니어가 아니기를 요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 어려운 순간, 처음인 일을 처음이라고 인정하기 망설여지는 상황, 그 사이에서 계속 괜찮은 척해야 하는 감각. 솔직히 말하면 꽤 피곤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 상황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왜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이미 준비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할까.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이게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완전히 준비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맡고 부딪히면서 배우게 되는 것. 돌아보면 내가 기억하는 성장의 순간들은 대부분 그랬다.
여전히 나는 주니어다. 하지만 예전보다 조금 더 빠르게 판단하고, 조금 덜 헤매고, 조금 더 버티게 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주니어이지만, 주니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이 어중간한 상태는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어쩌면 지금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구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