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마음

by 여래


오전 8시 40분, 큰 결심을 한 듯 힘껏 이불을 옆으로 걷어내고 앉은자리에서 이곳저곳 움츠러든 몸을 뽑아내듯 스트레칭을 한다. 13년을 성실한 출근자로 살아왔던 도연은 출근시간대임에도 아직 이불에 몸이 담가져 있음에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두 번의 스무 살을 살아내는 동안 확실하게 체득한 것이 있다면 쉴 땐 죄책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똑같이 지나갈 시간 앞에 두 마음을 가지고 살면 나에게도 시간에게도 이득 될 것이 없다. 훗날 죽도 밥도 아니었다는 후회만 남을 뿐이다. 그저 최대한 주변에 있는 여건들의 부정적 타격감을 줄이고 무색무취의 것들에서 긍정과 이로움을 찾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일지 모른다. 완성형 행복을 찾는 순간 인생은 괴로워진다는 것도.


그리고 생각한다. "그걸 알면서 대체 왜 너는 그 모양인 것인지."






츠르르륵-


커튼을 옆으로 밀어낸 뒤 햇살을 온 몸으로 가득 받기 위해 창문 앞에 서 본다. 살짝 고개를 들어 보이는 태양 앞에 합장자세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며 나름의 자연에의 감사함과 존경을 표현한다. 도연은 부처님을 믿는 불자지만 지금의 짧은 기도 행위는 꼭 석가모니에게만 하는 기도는 아니다. 힘든 시간 위로받았던 것이 부처님 단 한 분만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오늘도 내게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지 않고 다시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속히 참회하고 겸손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그저 나와 나의 가족, 소중한 이들 곁에서 함께 할 수만 있게 해 주세요..'


소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욕심 가득한 소원을 덧붙여 아침 기도를 마무리한다.

출처: Gemini



남향 집의 이점은 아침 햇살을 가득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온 우주가 자신을 맞이해 주는 것 같다. 햇살이 좋은 날엔 환영한다고, 구름이 많아 흐린 날엔 오늘은 좀 차분하게 보내라고 조언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도연은 이런 작은 감사함을 때때로, 아니 자주 수시로 잊고 산다. 이런 작은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자주 불행해 할리는 없다.


이곳에 도연이 이사 온 지 이제 막 10일 정도 되었다. 이사를 결정한 후 관계의 안팎으로 걱정과 우려, 염려를 가장한 우스움을 받으며 선택한 곳이다. 주로 "왜 그런 선택을 했어?" 라거나 "응? 거기로 이사 간다고? 왜?"라는 식이다.

집을 오로지 재산의 증식과 정보의 흡입력 세기로만 보자면 살던 곳을 떠나 이 곳으로 온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라며 위안한다. 그러나 저러나 도연은 이 집이 마음에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집에 조금씩 정을 주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태양 빛이 인상적인 창문 앞에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거기에 홀로 앉아 이따금 생각한다.

'나와는 달랐으면 좋겠다. 내 자식만큼은.' 집에도 자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정을 주고 웃어줄 수 있을 만큼 일상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말이다.






도연은 자신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정답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인생이 불행해지기 위한 가장 큰 이유를 끌어안고 산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심신이 바늘처럼 곤두서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온화하고 여유로운 마음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첫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한 시기부터 줄곧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수많은 기행이 있었지만 말이다. 때론 그 기행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했고 나락으로 밀어버리기도 했다. 분명한 건 이래도 저래도 모두 도연이라는 딱 한 사람일 뿐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없다.


그렇게 매 순간 바라마지 않던 마음의 목표와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도연은 시종일관 날 선 심신이며 그 모습은 꼭 바늘 같다. 날 선 바늘 같은 자아가 튀어나올 때면 손가락으로 그 끝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고. 그러다 살갗이 벗겨지면 골무를 껴고 다시 또 누르고 누른다. 이제 골무는 찢겨 없어진 지 오래다. 한때는 골무를 탓하며 이것저것 새로 갈아 끼운 게 몇 년에 이른다. 그렇게 도연은 애꿎은 손가락 생 살만 계속해서 찔러대는 통에 이제 오른손가락들은 형태가 온전치 못하다. 기능도 마찬가지다.


도연은 그런 상태다. 성한 곳이 없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알고 있지만.

하루도 치유의 손길조차 온전히 받을 수 없을 만큼 헐어버린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살아왔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

모든 상황이 여건이 마음이 계속해서 기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견디고 막아내고 온전한 정신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도미노의 마지막 차례 조각을 등으로 받치고 있는 것 같다.


도연은 생각한다. 차마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삶이라는 단어도 거창하다. 그저 오늘 미친 듯 날뛰는 심장과 몸의 불안함을 잠시 눈속임이라도 해서 잠깐의 쪽잠을 잘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힘이면 된다. 그렇게라도 부여잡아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짐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