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워서도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꼭 가부좌를 틀고 정해진 자세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상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그 언제든 말이지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누워서 하는 명상인 '와선'을 해볼 겁니다. ....... (어려운 말씀들 생략..) 먼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천천히 누워볼게요. 그리고 마치 잠들기 위해 침대 위에 눕듯이 몸에 들어가 있는 온 힘을 천천히 빼보세요. 머리 목 어깨 팔 손 다리 발 순으로 긴장되어있던 곳들을 천천히 풀어줍니다. 호흡도 가급적 천천히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온화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스님의 목소리가 도연의 마음을 간질인다. 올망졸망 맑은 외모를 가진 비구니 스님의 목소리는 아마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최적화된 음성 데시벨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북한산 중턱에 자리한 산사의 법당 안에 있으니 도연은 좀 살 것 같다. 그저 산 새소리와 스님의 나긋한 목소리 만이 들릴 뿐이다. 아마 도연은 온전한 와선에 들기 전에 잠이 들 것 같다. 완벽한 몸의 이완이 되는 순간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는 선순환. 이런 종류의 천천히, 느림은 말 그대로 '미학'이라 칭할 만하다고 도연은 생각한다.
도연은 어릴 적부터 어린이, 학생, 청년 자격으로 계속해서 사찰 법회에 참석해 왔다. 자의라기보다는 타의로 시작해 성인이 되고 나니 함께 하던 법우들은 하나 둘 떠나고 혼자만 그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떠나고 새로이 오는데 도연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켜왔다. 회장이니, 총무니, 봉사부장이니 하는 직책만 바꿔가면서. 가끔 유명해진 배우, 모델의 인터뷰를 볼 때면 "저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 따라 와서 캐스팅된 거거든요!"와 같은 동일한 히스토리 플로우가 있다.
오랜 시간 절에 다니다 보니 도연은 108배 정도는 15분이면 할 수 있고, 그것을 10번 해야 하는 이른바 정진에 속하는 1080배는 안 쉬고 하면 2시간이면 너끈히 해낼 수 있었다. 젊고 어린 그때의 도연은 부드럽고 유연한 무릎 관절 덕에 '오늘 절을 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그게 몇 배든 가능했다. 정말 마음만이 문제인 상태. 그럼에도 무엇보다 뭐든지 빠르게 해내야 했던 성격이 부스터 역할을 했으리라. 몸이 지치면 마음이 몸을 이고 지고 끌고 가면서 "아 답답해~ 빨리해! 어서해!"라고 독촉하면서 말이다. 모든 면에서 도연은 1.0배속을 좀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도, 일처리를 할 때도 요약화, 숙련화, 고속화를 선호한다.
하지만 명상을 할 때는 좀 달랐다. 대체로 1.25배속부터 2배속 사이에의 삶이 고정 값인 도연에게 유일하게 '천천히'가 진심으로 허용되는 시간이다.
방전된 몸뚱이의 충전시간인 셈이다. 그말은 도연의 심신이 방전 일보직전이라는 뜻이다. 원래 그렇다 고속, 초고속은 그만큼 배터리를 갉아먹게 마련이다.
도연의 고속화 아니 초고속화된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는 마음뿐 아니라 '어깨'의 평화를 갉아먹었다. 이왕 떡 벌어진 어깨를 가졌으면 그 넓은 어깨가 좀 더 완만했으면 오죽 좋으련만.
이제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했을 뿐인 도연의 어깨는 거의 못쓰는 것이 되어 간다. 오른팔을 뒤로 넘길 때 어깨와 윗 팔 어딘가의 뼈가 서로 걸구 치는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나면서 뒤로 넘어가면 다행인데 소리는 다른 다른 곳에서도 난다. 입에서 "아!" 신음 소리가 튀어나 오는 즉시 팔은 더 이상 뒤로 넘어가지 못한다.
'다른 자세는 되겠지?'
작은 희망을 갖고 어깨뒤로 오른손을 넘기고 왼손은 아래로 넘겨 맞잡아 보는 시도를 한다. 역시 안 잡힌다. 손과 손 간격이 이십일 센티미터쯤 된다. 그 와중에 가뜩이나 짧은 목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어떤날은 누군가가 어깨 위에 막대기를 목 위까지 사선으로 세워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단 5mm의 움직임에도 뼈를 찌르는 통증이 느껴진다. 그말인 즉 좌우 상하 올리거나 내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 통증은 곧바로 편두통으로 이어진다. 만성이라 익숙하지만 통증 세기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매번 새롭고 극심하다.
특히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듯 서서히 밀도있게 느껴져온다. 통증의 정상을 찍는데 까지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도연의 어깨는 늘 혹사해왔다. 답답함과 맞바꾼 빠름, 빠름과 또 다시 맞바꾼 고통이다. 정작 빠름의 결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빨리하려고 했음인데 무엇을 빨리했는지, 그 빠름으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도연은 떠올릴 수 없다.
두 번째 스무 살의 경계에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다. 통증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피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취한 자세 이른바 어깨를 한 껏'움크린 자세(동의어 라운드 숄더/ 심하게 굽었으니 슈퍼를 붙이겠다. 슈퍼라운드숄더)'는 다시 정자세를 취하기 위하 상체를 오롯이 펴는데에 약 2초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말리고 말려 웅크려져 있었던 건지. 특이사항으로는 마음의 걸림이 있고 스트레스가 유독 많거나 본인의 잘못이 비교적 명확하여 반성할 것들이 많을 때는 3초~4초 이상도 걸린다는 것. 아파서 못펴는 것인지 부끄러워서 못펴는 것인지 경계가 있을수 있다는 것.
어깨를 쫙 펴지 못하는 삶이라는 건 그래서 여러모로 안타깝고 아프고 고달프다.
반면에 어깨를 쫙 펴는 것. 그것은 세상으로 한걸음 다 다가가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펴기까지 아프고 힘들고 오래걸리지만 나도 어디선 꿀리 않는 다는 마음인 것. (갑자기 지드래곤 노래가 입에서 흥얼거려진다.) 이젠 어깨좀 펴고 살아보고 싶다는 것은 자신이 한걸음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보통은 말린어깨에 아픔도 층층이 쌓여 퇴적되기 마련이라 마음과 몸이 함께 따라주지 않는이상 나아짐이 쉽지는 않았다.
이런 당연한데 새로운 과학이론을 설명해낸 마음을 느낀 도연은 떠올려본다. 굳이 굽어진 어깨를 3초 이상 들여가며 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웅크림이 없는 어깨를 갖게 되는 삶을 말이다.
한없이 말린 어깨를 펴기위해 무엇부터 할 수 있을지 도연은 궁금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