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공평하다는 것

by 여래




정말 화가 났던 건 정말이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정말 조용히도 매 고비를 잘 넘기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참 많은 것 같은데 미리부터 예측하고 조심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 화는 내가 입게 된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나는 더욱 순식간에 쪼그라들 뿐이었다. 쪼그라들어 아주 영원히 사라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렇게 쪼그라진 상태로 발악하듯 내 입에서는 된소리 센소리 발음들을 구사하다가 이내 '이러면 안 되지' 하며 그마저도 내가 원치 않는 순간에 가장 볼품없는 모습으로 소화기에 의해 강제 소화되는 모습처럼 살아왔다.


다만 그 어디에도 타인의 강제는 없었다. 순간순간 내가 선택한 연속이었다. 그래서 책임도 내게 있음을 분명히 알았을테다. 그렇기에 마음속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남탓하는 순간을 꼭 가져야만 했는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내 마음의 짐을, 그 무게를 덜고 싶어서. 하지만 철저히 비밀리에. 겉으론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정성과 공을 들이고, 조심스럽게 임한 귀한 것일수록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만큼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선 아주 작은 티끌도 큰 태산처럼 보인다. 꼭 무균실에 들어온 한 톨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처럼 그것이 결정적인 실패의 이유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수많은 감정을 안고사는 사람이지만, 특히 스스로 쪼그라드는 류의 감정에 도가 텄다. 그런 모습을 준비성이라는 이름으로 특유의 예민함이라는 겉멋에 사로잡혀 살다 보니 그런 삶이 15년여쯤 흘렀다. 우울한 게 멋이고 고뇌하는 건 더 깊어진 마음이라 생각했다. 고뇌가 아니라 불안에서 시작된, 그러나 끝을 몰라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의 암울함에 더 가까웠다. 그런 나를 보고 15년 전의 누군가는 척하지 말라고 했고 10년 전의 누군가는 순수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나는 내게 좀 더 듣기 좋은 말을 선별해 기억해 내려 애썼고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이에게는 내 감정은 진짜라며 더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었다. 아직도 나를 찾지 못했던 시기였을지 모른다.



정말이지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때론 무색무취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색무취도 나만의 색깔이다. 나도 모르는 내게 자꾸만 색을 덧입히려 하다 보니 맞는 색을 찾겠다며 되지도 않는 경험과 일탈 그 어딘가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게 아니'라며 금방 헤어져 나오지 못하고 그 삶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한참을 헤매다 거의 대부분을 잃을 때 즈음에 천운으로 누군가에 의해 건져지거나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거기에 덩그러니 놓이는 형태를 취한다. 그런 삶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이제는 안다.


나는 그때의 나를 아는 사람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같은 사람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십수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기위해 서른일곱이라는 다소 늦은나이에 전향을 했다. 두려움이 많은 내게는 일생일대 손꼽히는 큰 변화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십여년전 즈음부터 마음도 생각도 사고도 신념도 모든 게 바뀌었다. 좀 더 분명히 이야기하자면 그때처럼 살지 않는 삶이 보다 심신에 안정을 주는 삶인 건 확실히 알게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를 고민 하나 없이 살지는 않는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 여전히 똑같다.


하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선 그럴 수밖에 없는 인과관계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고, 순간 욱하는 감정들이 올라와도 그 부정적 감정을 가라앉히고 '내게 더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와 같은 마음을 취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나의 젊은 시절을 닮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삶들을 살고 있기도 하다. 나와 같은 그런 시절을 겪고도 결국 후반부에는 "잘될 겁니다. 밝은 햇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결말을 알지 않는 이상 아이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다.


돌이켜보니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내게서 비롯된 것임을 온전히 자각한 순간 오히려 내게 행운이 왔는지 모른다. 마침내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삶이 적어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을지 모른다. 2~3일이면 회복할 수 있는 장염에만 걸려도, 그것이 내 아이게된다면 내가 다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나는 건강할 때의 삶, 걸어 다닐 수 있는 지금의 삶,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맞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안다.


반드시 경험을 해야만, 그 조차도 보고 듣는 것보다는 내가 몸소 겪어낸 일들에 대해서만 그 효력이 훨씬 더 깊고 진하다는 세상의 이치는 어쩌면 이 세상이 아직은 공평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인지 모른다. 경험조차도 출발점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고 믿는 이 사회에서 보고 듣는 경험은 오래 걸리지만 내가 겪는 경험은 겪어낸 시간 대비 반드시 더 깊고 진한 여운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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