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과거 어느 때를 떠올려 보라 한다면 큰 고민 없이 곧바로 서른 셋을 떠올린다.
예쁜 두 아이를 품에 안던 날.
회사에선 과장 직함을 막 달고 후배가 생겼던 8월의 어느 날.
육아하며 사회생활을 하느라 고생한다며 격려의 말을 자주 듣던 시절.
어쩌면 난 정말 대단한 슈퍼우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날들.
참 이상하다.
나의 과거 중 하루를 밀착해서 '줌'해 보면
매일 퇴근 후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동료에게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던 일들을 말과 표정과 행동으로 표출하기에(표출되기에) 바빴던 날들의 연속임이 틀림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가?
세월이 흘러 마흔이 되었고 그때의 스트레스, 힘들었던 기억은 그야말로 기억 속 안개가 되어
'힘들었었지.'라는 다섯 글자의 흐릿한 기억만 남게 될 것을. 단지 그때의 여파로 지금도 뿌리 염색이 없다면 끝자락에 먹이 묻은 서예 붓 처럼 계속해서 자라나는 정수리의 새치와 주름만이 그 시절 힘들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그 기억들을 굴비처럼 엮어서 상자에 넣으려니 상품명엔 '그땐 그랬지. 좋았었던 날이었네.'로 정리될 숱한 날의 집합체일 뿐이다.
'하, 그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렇게까지 마음 쓸 필요도 없었던 건데. '
사실은 그때도 지금도 남편 그리고 주변 선배들 모두가 내게 입을 모아 말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전혀 들리지 않던 그 말의 깊은 속뜻을 이제야 알게 된다.
7년쯤 걸렸나 보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영영 모르고 살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에 대한 권태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사무치던 날들인데 희망이 조금은 보인다.
보통 마흔을 두 번째 스물, 두번 째 청춘이라고들 한다던데.
나는 마흔을 첫 번째 맞는 성인으로 표현하련다. 암만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막 성인이 되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것 들이 있다.
죽음에 대한 것, 인생에 대한 것, 삶에 대한 것. 이런 황혼에 접어든 것 처럼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걸 보니 마흔이 첫 번째 맞이하는 성인이라는 생각에 더 힘이 실린다.
살면서 딱히 죽을 날을 생각하거나 인생의 끝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십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했지만 그 조차 슬픔, 사무침, 죄송함의 기억일 뿐 나의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온 날 만큼 더 살면 나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 목숨 언제까지인지 하늘도 장담할 수 없지만 여성 평균 수명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내 죽음이 다가올 때 즈음 내 옆에 아무도 없게 된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별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고 살던 내가 언젠가 가장 소중한 이를 잃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먼저 가는게 덜 슬픈걸까? 너무 내 생각만 하는건 아닐까? 내가 그를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그때가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와 같은 답을 모르겠는 것들.
물론 현생이 너무 크고 빠르게 스치는 현실이라 그런 생가들을 오래 붙잡아 두진 못한다. 그러나 자못 떠오르는 상상에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다. 답을 내려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마치 당장 닥쳐온 일인것처럼 마음이 조급해 질 때면 나는 당장이라도 못해본 것들과 해보고 싶던 것들 무엇이든 하나씩 해나가기에 바쁜 여생이 되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되어 한참을 마구 달리다 제정신이 들면 그제서야 발을 뻗어 강제로 바닥에 스크레치를 내며 차를 억지로 멈춰 세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 늦은 김에 좀 더 천천히 가야겠다.'라고.
준비없이 와서 준비없이 살아가는 이 인생에 어떻게 살아가리라는 기준이라도 하나 생겼다면 이제는 달려나가지 말고 그 기준을 향해 정확히 한 걸음 가보겠다고. 대신 도착지를 잊지는 않겠다고.
이제껏 천천히 걸어왔던 길 조금 더 천천히 간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라고 스스로의 등을 두들기면서 말이다.
급하다가 이내 멈추는 패턴이 반복되는 마흔의 어느 날이다.
참으로 요상스러운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