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거닐던 길.
아니, 사실은 무심하지 못했다.
무심이 초심이었음을
알지 못했던 날들.
짐으로 가득한 마음을
억지로 이끌며 어디가 끝인지 모를
거대한 산으로 진입했었다.
가는 길은 그 뿐이었다.
다른 방도는 알지 못했고
어쩐지 그 곳에서
하루 빨리 헤어 나오고 싶었다.
사방 모든 것이 겁이 났다.
그저 가장 안전한 곳에서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몸, 마음 어디든
작은 생채기조차 큰 흉터로 남아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물성 없는 깊은 두려움.
감각할 수 있는 곳은
한껏 곤두서 있었다.
사실 그곳은
산보다는 숲에 가까운 어딘가 였지만
온 몸이 곤두서 있는 내게는
숲보다 정글이었을지 모른다.
곧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고요하고 한가로웠을
작은 풀벌레 소리는
내겐 그저 날카로운 자극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는 일 조차
오직 밟아내는 두꺼운 신발
밑창의 감각만으로
낙엽 밑에 구덩이가 존재하진 않는지
느껴야만 했다. 끝없이 의심했다.
일렁이며 불어오는 바람은
잠시나마 쉼을 주었지만,
그 쉼은 온전하지 않았다.
마치 잠시뒤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화살 같았다.
반드시 더 빠르게 나아가야만 하는
화살의 운명.
이십 년쯤 지나니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온전히 적응을 한 걸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이 지나고
난 자리엔 허탈함 비슷한
무심이 남는다.
달리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예상하지 못했던
어딘가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다시금 뒤를 돌아보니
무심이 곧 초심이었다.
이 모든 걸 마치 알고 시작했던 것처럼
정확히 딱 그 길 위에서 시작했다.
산인지 숲인지 가려낼 새도 없이
정처 없이 걷던 곳.
긴장의 땅 위에서
마침내 어깨 위 짐을
내려놓게 된 뒤
비로소 고개를 돌려
걸어온 길을 볼 수 있었고
시작점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삶이 그러하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뿐이다.
그리고 반드시 겪어내야만 하는 일이다.
그 모습, 받아들임의 크기, 시기만 다를 뿐.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리 살기로 했다.
한 걸음 더, 숲으로 나아가 보자고.
그렇게 '한걸음 숲'이
마음 속 고요하게
하지만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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