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은 더 지난 회사 다닐 때의 일이다. 행정 부서에서 근무하던 하던 어느 날, 회사 사장스님은 나를 부르셨다. 그렇다 사장이 아니라 사장 스님이다. 스님이 사장이셨다.
"내 사찰 주지일 때 신도들에게 감사노트를 쓰게 했는데 참 좋더라고?"
"아, 네..."
감사노트를 내게 주시겠다는 말일까? 좀 구입해다 줄 순 없는지 말씀하시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결론은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을 충분히 담아 내지 기획, 편집을 내게 직접 해보라는 말씀이셨다. 마음을 관리하는 분야 그러니까 한동안 힐링, 마음치유라는 키워드가 붐이던 시기가 있었지 않은가? 사실 나는 그 훨씬 이전부터 '마음 잘쓰는 법'을 체득하는게 인생의 모토이기도 했다. 극심한 결핍에서온 관심같은 거였다. 늘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시기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분야에 관심이 참 많았다. 꼭 그리 살고 싶어서.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글 쓰는 걸 워낙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스님이 요청, 지시사항이 꼭 업무부담으로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행정업무만 하던 내게 반대쪽 뇌를 사용하라 하시니, 그야말로 단비 같은 일이었다.
다만,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하는 스님께 죄송한 말이지만 의구심은 있었다. 감사노트를 '만들'준비는 되어있는데 그 효과를 내가 직접 '체험'한 경험이 전무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울화가 가득했던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이니 오죽했을까?)날들이었기에 '감사노트'쓴다고 바로 마음이 평온해 지진 않을 것이다. 한달치 일기장을 한권으로 묶는건데 한달안에 마음에 긍정적 변화가 온다고? 매일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쓰는 날들이 오래 누적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끝없는 혼잣말, 생각들을 했었다.
'아침에 건강히 일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럼 일상적이며 당연한, 그러나 너무 큰 감사함이기에 추상적이게 느껴지는 감사목록들은 당시엔 와닿지 않았다. 눈을 떠 출퇴근을 하다 보면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이 가버린다. 그 하루 중 긴 시간이 회사스트레스인데 출근을 위해 기상하는 순간이 내게 감사할리 없었다.
꼭 내게 거짓말하는 기분도 들었다. 단지 예를 들었을 뿐인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와닿지 않는 감사함을 쓰는 행위가 심하게 말하면 위선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에 말이다.
스님께서는 앞서 감사노트 제작 취지를 설명하시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하셨다. 교정교화포교활동을 하실 때 교정청의 승인을 받아 수용자에게 감사노트를 무료배포 하신 적도 있다고 하시며 그 효과가 너무 컸다고 연신 말씀하셨다.
사회의 중심에서 잠시 격리된 이들도 감사노트의 효과를 본다는데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단지 열심히 노트를 만들 물리적 준비만 되어있었다. 스님의 취지를 '머리'로 이해하고 그대로 옮길 준비와 내가 체득한 효과를 녹여내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어쨋든 스님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열심히 기획,편집에 몰입했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말 나 혼자 준비했던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스님의 취지를 녹여내 각 일자마다 경전구절을 넣고 매일 써온 감사일기 중 핵심 키워드를 찾아 빙고판 메우듯 한 달 동안 나를 감사하고 행복하게 한 것들을 정리해보게 하는 둥 나의 아이디어도 가미된 감사노트는 반년 간 2400권 이상 무료 배포가 되었다. 각계각층에서 연락을 주셨고 스님이 말씀하신 포교의 영향력, 내가 생각한 목표배부량에 가 닿을 수 있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시간이 흘러 고민끝에 결국 3년전 그곳을 퇴사했다. (퇴사고민부터 실행까지 꼬박2년이
걸릴만큼 신중하게 결정했다.) 근무하는 동안 행정분야가 내 주업무였음에도 그곳에서의 9년의 세월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단연 감사노트를 제작했던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사일기의 효과를 5년이 지나서야 느낀다. 아니, 스님의 말씀을 이제야 체감한다. 노트대신 마음에 일기를 새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낸 날이 이제 1년 7개월을 향해간다. 감사함을 가슴에 새기는 일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내겐 속 시끄러운 일이 더러 일어난다. 인생을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를두고 전처럼 삶의 끝을 보듯 심각히 여기지 않고 그리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저 언젠가 도착할 인생의 종착역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를 건너는 중이니 그 징검다리 위에서 마구 힘쓰지 말자고. 그저 집중하되 가볍게 건너가 자고 말이다.
고통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고, 이유 없는 일들은 없으며 아침에 일어나 두 아이가, 남편이 건강히 눈 마주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 안다.
이를테면 남편의 기능장 자격 시험을 하루 앞두었던 어제 오후.
두 아이에게 하교 후 연락할 일 생기면 반드시 엄마에게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공부하고 있는 아빠를 오후 내내 다섯번 넘게 연락해 바깥으로 불러내는 야속한 아이들에게 나는 퇴근 후 평소와 다르게 심하게 꾸짖고 엄하게 대했다.
물론 아이들도 저마다 이유가 있었다. 놀다가 나무가시가 손에 3개나 박혔고, 자전거 체인이 빠졌다던지.... 하지만 그 사건들을 늘어놓는 가족단톡을 일하다 확인한 내게 제일먼저 든생각은 아이들에대한 서운함이었다. 그 이틀도 배려해줄 순 없는지 엄마가 신신당부할 땐 잔소리인 것처럼 여기더니 결국 공부하고 있는 아빠에게 평소보다 몇 곱절 더 잦은 연락을 한다는 게. 그것도 하필 시험 전날.
집에 일찍 귀가하라 했는데 기어코 고집피워 더 놀더니 나무가시가 손에 박히고, 학원 끝나면 집으로 바로 오라고 했지만 친구들과 더 놀다가 결국 자전거 체인을 고장낸다던지. 일하는 중이라 아무것도 손쓸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이 마음의 화를 더 돋구었다.
마음이 꼬여있고 예민해져 있을 땐 무엇을 해도 과민하게 받아들인다. 알면서도 그 순간엔 '이렇게 해야 마음의 화가 풀리지'와 같은 이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거의 백지처럼 새하얗게 된다.
그저 계속해서 여러 번 경험하면서 다듬어가는 것이다. 느끼고 배운 게 순간마다 매번 기억나고 그로 인해 그때그때 고칠 수 있다면 세상에 고민, 고통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아이들과의 작은 일을 통해 그간 얼마나 남편이 가정에 충실했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였는지를 진정 가슴으로 깨달았다. 도리어 그 과정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아무런 케어조차 못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머리론 알았지만 가슴깊이 느끼는 남편의 소중함 감사함을 새삼 느낀다. 이제는 감사 일기를 펼쳐 손으로 직접 적어내지 않아도 마음에 새기는 날들이 이어진다. 정말이지 너무도 감사하고 기적이 연속인 나날들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불편함만을 집어내고 그 불편함을 가지고 이미 건너고도 남았을 징검다리 위에서 일장연설을 늘여놓는 삶을 살았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모든 것들이 머리 대신 가슴에 가 닿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일들이었나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시끄러운 소란들.
큰 일인지 작은일인지 결정하는 것 역시 받아들이는 내게 달린 일이다. 모든 삶의 일들이 결국 궁극의 깨달음을 위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징검다리 위를 건너가는 일이라 생각하니 크고 작은 소란들이 조금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다행한 일이다.
내 삶의 찰나에도 이것들을 잊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