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슬플 땐 그림을 그려

by 여름이 언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던 어린 시절의 나. 하지만 유일하게 본인의 의지로 일찍 일어날 때가 있었다. 매주 일요일 오전 8시마다 눈곱도 떼지 않은 채 거실의 빨간 소파에 바로 앉아 디즈니 만화동산에 출석 체크를 하는, 만화에 진심인 어린이었다.


만화를 사랑했던 어린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동네 만화책방을 제집 드나들 듯 다녔다. 예쁜 미미인형보다 복슬복슬한 봉제인형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많고 많은 책들 중 귀여운 토끼 센타로와 반려인 바쿠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누노우라 츠바사 작가의 『센타로의 일기』를 가장 좋아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만화책을 진심으로 애정해서 용돈을 모아 1권부터 24권까지 구매했다. 책장에 줄 맞춰서 나란히 꽂아두고 바라보니 여느 보물 부럽지 않았다. 한동안 학업에 열중하느라 소홀해졌다가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센타로의 일기’를 찾곤 했다. 내용을 다 알고 있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밌었다. 나는 그림 안에서 위로받고 그림으로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2008년 6월부터 센타로와 바쿠처럼 내 일상도 반려견 여름이로 가득했다. 만화책처럼 웃기고 아찔한 에피소드는 없어도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의 ‘여름이의 일기’는 16년 5개월 넘게 (마음속에서) 연재 중이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 끝자락에 여름이는 신부전 말기 판정을 받고 마지막 57일을 보냈다.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상실의 슬픔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강아지별로 떠난 다음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신나는 캐럴과 알록달록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 아래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울고 또 울었다. 겨우내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좀(벌레)처럼 끝없이 나를 갉아먹었다. 펫로스 증후군이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나처럼 반려견을 떠나보낸 그림 작가님께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신은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나에게도 여름이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했다.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흘리려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그림 계정에게 미안해서 애플펜슬을 손에 쥐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그리는 바람에 엉망진창이었지만 슬픔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다. 뒤죽박죽 섞여있던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아 생각보다 마음이 후련했다. 의외였다. 그리고 ‘내 그림이 슬픔을 겪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뭉클한 용기가 생겼다. (고마워요 두부 작가님)


슬픔은 미성숙한 나를 성장시켰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더 깊이 있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단순히 행복한 삶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성장의 양분으로 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혹은 떠나보낼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선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했든 당신은 최선을 다 했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사실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슬픔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아닌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천계영 작가의 『언플러그드 보이』 남자주인공 강현겸은 이렇게 말했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몸치인 나는 춤은 못 추지만 슬플 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나의 경우 그림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다. 반려동물에게 보내는 편지여도 좋다.


여전히 나는 슬프다. 하지만 이제는 슬픔이라는 해일이 저 멀리서 스멀스멀 몰려오려고 할 때마다 책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18년 동안 연재해 37권으로 완결된 ‘센타로의 일기’처럼 나도 ‘여름이의 일기’를 오늘도 그린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된 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