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가 뭐예요? 음주입니다.

by 여름이

올해(2024년) 목표가 뭐예요?

음주입니다

네?, 뭐?

아니, 그게 목표가 될 수 있어요? 음주는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당연한 게 나한테는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지


부서 이동을 하여 새로운 팀에 합류하고 1년이 지나 새해를 맞이했다.

이런저런 수다 속에 새해 목표도 빠질 수 없지.


나의 목표는 <음주>였다.

그래 술을 마시는 것.


오늘은 왜 나의 목표가 음주인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다.


3년 전 정말 운 좋게 사내 부서이동 신청이 받아들여져

해보고 싶던 일을 하면서도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먼 지방에서 일하다가,

‘가족’과 가까이 살 수 있고, 친구들을 볼 수 있는 서울로 오면서

웃음을 잃은 다크 사원이 아닌 새로운 조직에서는 나는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뒤에 무엇을 감추고 있든 간에) 사회적 관계에서는 밝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바깥 생활’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고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팀원들에게 굳이 알리지는 않았지만,

7,8년에 걸친 심리상담을 통해서도 조금씩 견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 안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함께였다.


쉽게 이야기 나누기 힘든 사연(고통)을 감추면서,

나로서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부서 이동 전에 근무하던 17층 사무실에서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늘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상상했다.

서울로 오면서는 그런 상상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 하지만 동시에 기억해야만 한다는 다짐

못하는 걸, 하겠다는 ‘웃기는’, ‘조롱받을 만한’ 객기

그래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목표.


그렇게 찾은 것이 음주였다.


웃으며 이야기하면서 짧은 수다를 떨 수 있는 목표

“그런 사람 처음이다”라는 대화 한 두 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아뿔싸 그런데... 여기서의 난 웃는 사람.

게다가 팀원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서로 돕겠다고 나섰다.

사실 술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잘 마시지 못할 뿐이고, 마시지도 않을 뿐이지.

그런데 이미 내놓은 말이 있고,

또 말 그대로 무슨 객기인지 술을 마시기도 전에 사기 시작했다.

책에서 흔히들 나오는 것처럼 난 ‘소비’를 ‘스트레스’의 해소 수단으로 삼았다.

그래도 원칙은 있었다.

동물 그림이 있는 술을 마시자. 그리고 내 경제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말 것.


그럼 왜 동물 그림이냐고?


글쎄... ‘웃는 사람’으로서 이유를 만들자면

어린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니까

난 어린이가 좋으니까

난 유아교육과 학생이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


그렇게 몽키숄더/몽키47(원숭이), 와일드터키(칠면조), 래빗홀(토끼), 고든앤맥페일(사슴), 앤젤스엔비(이건...천사라서... 나의 천사), 레드브레스트(붉은가슴울새), 더페이머스그라우스(뇌조), 버펄로트레이스(물소), 그레이 구스(거위), 블랙불 카일로(검은 황소), 북극곰의 눈물(북극곰) 등

맥주는 <고양이가 우주를 구한다> 시리즈, <해피 호빵이>(강아지)

와인은 고래, 도마뱀, 당나귀, 토끼, 독수리, 오리, 말, 고슴도치, 각종 새들이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내가 이 술을 다 마셨냐고?


아니...

도수가 센 술들을 회사 회식이나 동아리 모임에 가져가서 풀었고,

와인은 마침 와인에 빠져있던 동생이 대신 마셔주었다.

맥주는 가볍게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5캔 만원 세일을 할 때마다 쟁여두었는데

마신 것보다 쌓인 술이 더 많다.


회식 때는 음주를 도와준다는 팀원들의 지원(?!)으로 이제껏 부서 이동 하기 전까지 평생 토했던 만큼 토했다.


나중엔 까마득한 후배가 술도 못 마시면서 객기를 부린다며

도움에 냉소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과음은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24년의 음주 목표는 실패다.


맥주와 안주 사진을 찍으며 팀원 단톡방에 인증을 하기도 하면서 노력했으나...

사실 맥주 한 캔도 버거워 사진을 찍고 나서 반도 안 마신 술을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로 어떤 위로가 되기도 했다.

정말 정말 술을 마시고 취해버리고(미쳐버리고) 싶은 적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25년은?


올해 목표는 사실 너무 많기는 하다.

휴직을 하기도 했고, 명확한 방향도 있으니까.

그 여러 가지 목표 중에 ‘음주’를 넣느냐는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음주 시즌2>

그런데 이런...

3월부터 휴직이 시작되며 나의 목표를 어필할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마셔야지.

또 다른 관계들을 맺어나가며,

나 같이 소심 내향형 인간이 대화를 시작하기 쉬운 수다거리 하나쯤은 만들어둬야지.

그리고 내 고통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니까


그래 어제 잠도 잘 잤고, 내일의 늦잠도 걱정 없으니

오늘은 벼르던 맥주 한 병을 꺼내자.


환경영화제 온라인 상영 영화를 보면서 맥주 한 병




@창밖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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