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일까? - 책, 독서, 북토크 그리고 사인

by 여름이

마음을 정하고, 때마침 서울로 부서 이동을 하면서 ‘나의 자리’로 돌아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도서관이었다. 살아낼 힘을 내기 위한 말 그대로 굶어 죽지 않기 위한 ‘마음의 양식’이었다. 다행인 것은 회사 내에도 작은 도서관(정식 명칭은 정보자료실이란 딱딱한 이름이지만;;)이 있어서 언제든 쉽게 책을 찾고, 또 신청할 수도 있었다. 서울로 와서 출퇴근을 지하철로 할 수 있게 된 것도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독서로 마음을 다잡아 가는 중 우연들이 겹쳐 책과 맞닿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뭔가 계속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날 눈에 띈 사내동아리 모집 공고. 뮤지컬동아리. 좋아는 하지만 내게는 좀 비싼 취미랄까...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이벤트 당첨으로만 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좋아하기도 하고, 나 또한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너와는 쉽지 않던... 언젠가 너와 함께 볼 것을 꿈꾸며,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긴 단순히 단체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동호회였다. 게다가 원하면 자유롭게 여러 가지 소모임을 만들어 모이기도 했다. 그중에는 내가 지나칠 수 없었던 독서모임도 있었다. 사실 독서모임이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타인을 만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궁금하고, 필요했다. 내가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도 접하게 되고,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게 책 하나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수다까지, 심지어 (보통 온라인 모임으로 했는데) 모임 중에 계엄사태가 일어나 또 그 이야기로 하루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독서 모임 초반에 이끄미가 다른 동아리원(알고 보니 조선희 작가님의 후배!)이 공유해 준 북토크를 모임방에도 공유해 주었다. 조선희 작가님이 운영하는 ‘책읽는고양이’ 카페에서 열리는 장일호 기자의 <슬픔의 방문> 북토크. 장소/작가/제목 모든 것이 운명처럼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에겐 편집장님으로 더 친숙한 동경하는 작가님의 공간. '우리의 이야기'를 위해선 기자가 필요했고, 책의 제목처럼 난 그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작가님의 사인을 받을 수 있으면 또 그 책은 나의 일부로서 나를 너에게 알려주고, 책과 함께한 이야기를 너와 나눌 수 있는 보물찾기 쪽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북토크 참석이 시작되었다.


작은 카페 공간에서 오손도손 모여 앉아 조선희 작가님과 장일호 기자님 앞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또 신기했던 건 모인 분들이었다. 이미 책을 낸 선생님들도 계시고, 감독, PD 등 동경하는 분들이 관객으로 앉아계셨다. 책 이야기도 마음에 와닿았고, 사인도 받고, 내가 속한 협회의 리플릿도 전달하면서 기자님의 명함도 받고 나에게는 너무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난 북토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 때는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찾아들고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행사 후 뒤풀이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더 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책읽는고양이’ 외에도 다른 북토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회단체나 출판사 또는 독립책방에서 하는 북토크에 참석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책을 사고 사인을 받았지만 언젠가부터는 지지의 마음으로 참석도 하고, 또 나누고 싶은 마음에 책 두 권을 사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공간도 넓어졌다. 광주, 대구 등 단순히 책만이 아니라 '그 장소'를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북토크는 나를 설득하는 핑계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일정에는 독서모임과 북토크가 쉬지 않고 새겨졌다. 특히 북토크를 통해 에세이를 많이 접하면서 글쓰기에도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글을 쓰는 모임’들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많은 작가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건 기회야라는 생각에 그리고 느슨한 연결을 좀 더 끈끈하게 (사실 그건 사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배우는 중이다)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 작가님의 책들을 수소문하여 멀리 떨어진 중고서점(절판)이나 심지어 출판사(학술지)에 찾아가 구해서 사인을 받기도 했다.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작가분들을 만나게 되면 그 연을 조금이라도 더하기 위해, 그분들에게는 그냥 사인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내가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했다.



그렇게 나의 저자 사인받기가 쌓여가다가 문득

‘중요할까?’

카톡으로 수다를 떨다가 이런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본인의 자아실현의 장으로 사용 중이구만”

너를 만나기 위해 시작한다고 다짐한, 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어쩌면 너를 핑계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일까?

이성적으로 보면 더 시급한 일이 있는데, 그것에 쏟는 노력은 오히려 덜하고, 늦춰지고 있잖아.

이런저런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하거나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글 쓰는 시간보다 차라리 1인 시위라도 하고, 법을 더 파고들고, 국회를 들락거리고, 기자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거 아냐?

너와 나의 공통점,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다고는 했지만 결국 나의 꿈이고, 나의 동경을 이루려는 거잖아.


그럼에도 아직은 여기서 멈춰야 할 더 확실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너와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공통분모는 지금의 현재에도 유효할까?

미래에도 ‘함께’의 끈이 될 수 있을까?

늘 이런 물음들이 날 망설이게 하지만

또 그렇기에 오늘도 집착과도 같은, 아니, 정말 집착일지도 몰라.

그렇게 책을 구해서 사인을 받을 거다.

이 힘이 없으면 이성적인 일조차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내 꿈의 길도 언젠가 너에게 닿을 수 있다고 아직은 믿고 싶으니까.




@창밖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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