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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벌써 마감이라고?
도서관 행사가 며칠 만에 마감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인원도 보통 10~20명 정도.
그런데 100명이 넘는 인원이라니, 게다가 며칠 안되었는데 벌써 접수마감. 도대체 뭐지? 바로 제목을 클릭했다. 내용을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강사의 얼굴을 보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구나... 차인표 배우, 아니 작가.
아, 내가 왜 이걸 놓쳤을까? 이렇게 유명한 사람에게 협회 리플릿을 전달하고, 우리의 사연을 알릴 수 있다면 큰 힘이, 아니 최소한 마음의 위로라도 될 텐데... 잠시나마 운명 같은 기분도 들었는데... 바로 작년 말에 동아리 독서 소모임에서 같이 읽은 책이 차인표 작가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신청 기간 자체가 지난 것은 아니기에 '대기자 신청' 버튼이 살아있긴 했다. 아쉽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과 간절함을 담아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후 강연을 이틀 앞두고 문자가 왔다.
'~김영삼도서관에서 곧 만나요!' 정말 운명인가?!
강연은 5/24(토) 5월의 넷째 주 토요일이다. 아이를 보러 가는 날, 면접교섭일.
막상 강연 참석 안내 문자를 받으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착잡한 기분도 들었다.
2년 가까이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이번에도 당연히 2~3분 남짓일 터이긴 하지만, 어쨌든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져야 했다. 그래야 아이가 사는 청주에서 서울로 돌아와 오후 2시 강연에 참석할 수 있으니까.
'아냐, 난 결국 아이를 만나기 위해 차인표 작가님을 보려는 거잖아.'
얼른 고속버스 예매앱을 열었다. 보통 당일이나 전날 예매를 하곤 했는데 토요일에 서울로 돌아오는 표는 매진인 시간이 많다. 그래도 이틀 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가장 빠른 표가 12시 10분이었다. 아, 너무 빠듯한데... 어쩌지... 취소표가 생기길 바라며 일단 예매.
그런데 안내 문자에서 나로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작가 사인회는 별도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뭐? 그럼 리플릿을 어떻게 전달하지? 딱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토요일이 다가왔다.
기적은 없었다. 아이는 선물이나 주고 가라고 했고, 난 아이가 좋아하는 레고와 간식 두 개를 천천히 차례차례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려고 했지만 2분 남짓이 나(와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일 뿐이었다.
고속터미널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 예매앱을 다시 열었다. 다행히 취소표가 있었고, 11시 45분, 조금 빠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책은 있어야지. 터미널 근처 중고서점에서 급히 이번 강연의 책인 <그들의 하루>를 사들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차례'와 '개정증보판(확장판)을 내며'를 지나 '작가의 말'. 글의 말미에 내 눈을 확 잡아끄는 문구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안아주는 일뿐이다. (중략) 글이 사람을 안아줄 순 없겠지만, 안아주고픈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이 글을 끝까지 썼다.
그래, 어쩌면 이게 차인표 작가님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강연에는 분명 Q&A 시간이 있겠지? 안아주는 일뿐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나도 안아주세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날 안아준다면 다가온 그에게 리플릿을 전달하는 거야.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책을 더 읽기는 했지만, 난 올라가는 내내 Q&A 시간에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지를, 반드시 용기를 내야 한다는 자기 최면을 거는 것에 몰입되어 있었다.
마침내 강연장에 도착. 강연의 주제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하루'의 의미였다.
흘러가버리는 하루가 아닌, 산처럼 쌓여가는 하루.
그래 오늘의 내 하루도...
예상대로 Q&A 시간이 주어졌다. 언제 손을 들어야 할까? 질문해야 해! 떨리는 마음속에 한 명, 두 명 질문이 이어졌다. 이제 곧 마지막 질문... 어떻게든 용기를 짜내 손을 들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마이크.
"작가님께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안아주는 일뿐이라고 하셨죠. 저는 아이와의 하루가 꿈인 사람입니다. 저를 안아주실 수 있나요?"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무슨 일인가요?"
이름을 물었을 땐 너무 감사했다. 물론 강연이 끝나면 잊힐 이름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나에게는 관심을 가져준다는 증거같았다. 사실 그 관심이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이니까.
나는 간단하게 설명을 했고, 차인표 작가님은 내게로 다가와 날. 안아주셨다.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협회의 리플릿을 전달했다.
오늘의 이 장면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이야기를 쌓아가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강연이 끝나고 도서관을 나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울컥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여성분 셋이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다.
"면접교섭이란 것이 있는데 말이야... "
@창밖은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