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4] 회식, 겨울 그리고 술꾼도시여자

술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by 여름이

지난주는 그렇게 음주 기회가 없었건만 이번 주는 예정된 술자리만 세 번.

M선생님과의 번개까지 네 번이나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적당히 배분해서 마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굴러들어 온 술자리를 마다할 순 없었다.


@ 일요일

동네서점과 함께하는 국제앰네스티 레터나잇(Letter Night) 캠페인에 참여했다. 지난주 책방에 갔을 때 주인장께서 참여가 좀 저조하다는 말에 가기로 했다. 명색이 소액이나마 후원회원인데 약간의 의무감도 있었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시사IN 기자님도 함께하기 때문이 리플릿을 전달하자는 마음도 한몫. 몇몇 지인분들과 책방에서 만나 술을 마셔보자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 결국 혼자 참석하고 그 지인분들 중 한 분인 진정한 술꾼 M선생님과는 행사 후 '책읽는고양이'에서 번개를 하기로 했다.

캠페인은 의외로 참여하는 분들이 많았다. 거기엔 비건모임을 함께하는 선생님도 계셔서 더 반가웠다. 미얀마의 인권 상황이나 편지를 보낼 기자와 정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신선영기자님의 사진기자로서 활동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고 남은 시간은 각자 자유롭게 편지를 쓰고 가면 되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리플릿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고민하는 사이 기자님은 선약으로 금방 나가시고, 앰네스티 담당자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리플릿을 전달해 드렸다.) 엽서 크기의 종이에 쓰는 간단한 그 편지가 왜 그리 써지지 않는지... 쉽게 쓸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써도 그건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글씨'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지, '마음'이 있다면 과연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라들이 편지를 쓰고 떠난 후에도 시작도 못하다가 그래도 쓰고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간신히 편지를 쓰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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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고양이'를 가면서는 M선생님께서 혹시 문을 닫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셨으나...

선생님이 본 K맵은 영업종료, 내가 본 N맵은 영업 중. 일단 가서 보기로 했다. 아니면 다른데 가지 뭐.

이럴 땐 K맵이 맞는 경우가 많긴 한데... 사실 기억은 오늘 문을 닫는 날에 가까웠으나, 일부러 전화를 한다거나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냥 거기로 가고 싶었다.

M선생님과 만나 낙산성곽길을 올라서 '책읽는고양이'에 당도했으나 역시 카페는 문을 닫았다. 우리는 그냥 산책이라 생각하며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내려갔다. 적당한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마침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고 이름도 낙산성곽길에 어울리는 정취 있는 단어. 어릴 적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다락'. 간단히 막걸리 한 병과 김치전을 시켰다. 음식점 부침개 답지 않은 얇은 두께, 성에 차지 않는 맛과 양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테이블 위 북스탠드에 책이 몇 권 꽂혀 있었는데 M선생님이 함께 아는 기자분이 재밌다고 추천한 책 <자기 앞의 생>이 있었다는 점.

제목은 마음에 끌리나... 동시에 불안한 '내 앞의 생'을 매일 마주하는 상황에서 선뜻 읽기엔 용기가 필요한 책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책을 빌리지도 펼쳐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짧은 산책 술자리로 이주일의 음주를 시작.



@ 월요일

복귀 후 첫 회사 회식

우리의 '골때녀*' 총무는 회식 장소를 콜키지** 프리인 음식점으로 잡았다. 그러면서 각자 술 한 병씩 가져오라는 주문을 했다. 새로 합류한 멤버들은 '응?'이라는 반응도 잠깐 있었으나 다들 그러려니 하며 어떤 술을 가져와야 하나 조금씩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게는 기회다! 집에 쟁여두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술을 조금이라도 소진해야겠어.

맥주(강아지), 사케(고래), 와인(직접 담근), 위스키(토끼). 각각 다른 주종으로 4병을 가져갔다.

테이블은 각자 한두 병씩 가져온 온갖 종류의 술들로 가득 찼다. 파트장님이 직접 담근 꾸지뽕주와 그냥 담금주 같은 나의 와인은 꽤 괜찮은 인기를 보였다. 그 외 하나도 같은 술 없이 다양하게 즐긴 우리는 결국 회식이 끝날 때까지 술 한병 주문하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콜키지 프리 없어지는 거 아냐?' 설마...



@ 수요일

다시 돌아온 '창밖은겨울'의 오프모임. 참석자가 적었던 탓도 있었는데 글쓰기 모임에서 흔치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가장 적은 네 명이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남성이었다. 이제껏 글쓰기나 독서 모임을 하면 남자는 거의 나 혼자 거나 한 두 명이 더 있는 정도였는데... 이날 우리의 모임 자체가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또 낯선 장면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 아닌가! 처한 환경의 이유도 있겠지만. 아...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후 친척분들이 챙겨준 야채 중에 무가 생각났다. 박스에 담겨 있는 무를 보며 '어머니의 무생채'를 재현하고 싶었는데 결국 난 무의 흙도 털어내지 못했다.

요리로 인한 죄책감은 뒤풀이의 떡볶이와 술로 잠시 묻어두었다.


@ 금요일

이날은 <그저 하루치의 낙담> 북토크가 먼저였다. 저자인 박선영 기자님도 있지만, 사회를 장일호 기자님이 하시는 지라 꼭 가고 싶은 북토크였다. 그나마 다행은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북토크가 한 시간 후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미깡님의 단골 술집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석한 적이 있어서, 앞선 일정이 끝나고 가도 술을 마실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저 하루치의 낙담> 북토크가 끝나고 장일호 기자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선영 기자님은 다른 분과 이야기가 한창이셨다. 그래서 장기자님께 (신선영 기자님을 포함해서) 리플릿 전달을 부탁하고, 책바바인딩으로 가는 지하철로 달려갔다. 하필 책을 읽다가 정거장을 놓쳐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상대로 미깡님과의 술자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 목표 음주이야기도 잠깐 나누었다. 그러면서 이날의 술자리를 빌미로 주인장께 마음에 담아주고 있던 제안을 했다. 내가 가진 술을 가져와서 나는 한 잔만 마셔도 좋으니 나머지는 주인장분들이 드시거나 카페 오시는 분들 같이 마셔도 되냐고. 결과적으로 그 이후 같은 장소에서 하는 '독서채무변제클럽'에 쟁여둔 와인을 한 병씩 가져가서 함께 마시고 있다.

작가님픽 청명주와 주인장픽 막걸리를 모두 마시고, 다시 작가님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의 방향을 잡게 되었다. 미깡님의 응원이 있다면 할 수 있어요!

술과 함께 창밖은 눈내리는 겨울밤
저 이제 주 2회 음주하고 있어요. 아마도?!


@토요일

협회의 자조모임이 있는 날.

이번 주 음주의 마무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길을 찾으며 술 한잔에 희망을 담아!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TV프로그램의 줄임말인데 총무인 후배는 정말 축구동아리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는 선수이기도 하고 회사에서의 캐릭터도 정말 통통 튀는 사람이기도 하다.

**콜키지(Corkage) 원뜻은 차치하고 여기서는 고객이 외부에서 가져온 주류를 반입해서 마실 때 부과하는 요금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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