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의 동거

여름의 기억

by 여름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정말?


슬슬 화장실 청소할 때가 되었다. 환풍기도 없이 좁고 습한 화장실을 슥~ 둘러보다가 창문에 걸린 거미줄이 눈에 띄었다. 창문이 뚫린 벽 모서리에 검은 곰팡이가 피어 닦아내기 위해 거미줄을 걷어내려다가 문득 멈추었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올해(2025년) 비건 교사 모임 활동에 참여하면서(그런데 난 아직 비건도, 교사도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대해 약간의 껄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집에 출몰한 바퀴벌레를 잡을 때는 그런 껄끄러움 따윈 없긴 하다. 해충이라는 당위와 그 벌레로 인한 공포가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몸을 움직이게 만드니까. 하지만 집 밖에서 종종 마주치는 바퀴벌레에 대해서는 해충이니까 밟아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도, 굳이?라는 생각과 함께 신발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마음, 밖이어도 역시 조금은 무서운 마음이 겹쳐 그냥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이 거미는?

넌 아마도 여기에만 있을 테고, 나의 방을 침범하지는 않을 거니까.

참고로 난 화장실을 닫아놓고 산다. 문을 닫은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목격하고 처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마도 ‘*녹슨 집’의 특성상 하수구를 통해 올라온 것이리라.

아무튼, 그래서 넌 위치가 예측 가능한 벌레. 적어도 내 몸을 기어다닐 걱정이 필요 없는 나에게는 안전한 벌레. 어차피 화장실 창문도 열어야 하고, 샤워나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물이 튈 수도 있고, ‘자연’의 흐름대로 놔두어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

일단 살려두기로 했다. 그렇게 ‘**거미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막상 살려두기로 하니 하나 둘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화장실 환기를 해야 하는데 창문을 얼마나 열어야 하지? 미안하지만 반 정도만 열게. 너도 우리 집에 맘대로 들어온 거잖아. 근데 먹이는 있나? 물론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도 날벌레들이 출몰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은 밀폐된 공간이니까 앞으로 날벌레가 없으면 어쩌지? 그러고 보니 넌 어디서 온 거니? 며칠 뒤 날벌레 한 마리가 걸려있었다. 다행이군... 근데 이러다가 계속 없으면 어떡하지? 잡아줘야 하나? 잠깐 그럼 그 날벌레는 그렇게 쉽게 죽여도 되나? 내 방을 침범한 녀석들을 잡는 거니까 그건 뭐...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거미줄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러면서 새로운 걱정이 들었다. 너 좀 커진 것 같은데? 얼마나 커지는 거니? 이러다가 1cm도 넘게 자라는 거 아냐? 혹시 번식이라도 하면 어쩌지? 한 쪽 창문의 반에서 시작해서 그 폭을 모두 사용하여 거미줄을 쳤을 때는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 때마다 부서지는 거미줄에 미안함이 올라왔다. 변하는 거미줄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고, 거미의 모습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다른 6개의 다리에 비해 월등히 크고 기다란 2개의 다리. 동그란 몸통과 작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냥 검은 좁쌀만한 크기에서 쌀알만큼 커졌을 때는 노란색 줄도 보이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왠지 원색의 곤충은 예쁘기도 하지만 때론 그 화려함이 무섭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일단 살려두었고, 아직 살아있어도 되지만...

언젠간 난 널 살해하겠지.

양심의 가책을 씻어내기 위해, 우연인 척 실수인 척 청소를 하면서 샤워기의 수압으로 너의 집을 깨끗이 씻어내겠지. 어떤 변명을 하며 너의 생명을 제거하게 될까?


방구석을 뒤집어 놓는 바퀴벌레와 넌 뭐가 다를까?

나를 공포에 빠뜨리는 감정의 깊이?

청결의 환상?

해충과 익충이라는 인간 종 차별주의자의 편견?

아니면 감당할 만한 크기라서?

어쩌면 집에 들어와 말 한 마디 건넬 살아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을까?


넌 나에게 어린왕자의 장미, 어린왕자의 여우가 될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니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네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1cm를 넘어간다면... 내가 참을 수 있는 불편감의 수준을 넘어선다면, 난 널 죽이겠지.

혹시라도 네가 아이를 잉태한다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선다면 난 너의 자식들을 포함해서 모두를 죽이겠지.

아니면 네가 아닌 타인으로 인한 분노를, 만만한 너에게 표출하여 널 죽일 수도 있겠지.

넌 알고 있을까? 내가 널 볼 때마다 안부를 물으면서도 언제 너를 죽이게 될지 고민한다는 걸.


그래서 문득 너에게 이름을 지어줄까 생각이 들었을 때,

곧 포기하고 말았어.

살리기 위해 도살을 앞뒀던 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친구들을 얼마 전에 봤지. 어쩌면 그 친구들이 부러웠을지도, 또는 어떤 윤리적 열등감을 조금이나마 메우려고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안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

난 ‘생명’이라는 핑계로 널 죽이려던 손을 멈추고, 너에게서 뭘 구하려고 했던 걸까?


이야기.

바로 너와 나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이야기.

오로지 글로 남길 수 있을 만한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

어린왕자에게 들려줄 이야기 하나를 추가하고 싶었을지도...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바라.

‘제발, 내가 널 죽이기 전에 날 떠나줘’


화장실 창문 한편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동거거미



*내가 사는 집이 있는 건물을 처음 봤던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는 ‘녹슨 집’이라고 표현했다.

**이 행위는...

<탈성장들: 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렁이 인간이 되기_(김이중)’편

<비판적 에코페미니즘>(그레타 가드)의 서문... 에서 비롯되었다.



@어딘글방, 창밖은여름




여름이 지나고...


언젠가 부터 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놔두었는데 2,3주 뒤 다시 돌아왔다.

작지만 반가움과 다행의 감정이 들었다. 어디서 그렇게 오래 있었던 거니? 아니면 그저 우연히 내 시선과 계속 어긋났던 거니?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다.

하지만 거미줄은 여전히 남아있다.

거미줄의 한쪽에는 오래 전 거미의 허물만이 남겨져 있다.

떠난 건가? 아니면 그냥 수명대로 끝난 것일까?

수많은 거미 중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이제와 그의 생애주기까지 찾아볼 관심은 없었다.

이름을 몰라도 네가 누군지 몰라도 그냥 같이 살 수 있는 정도의 유대감정도.

이제 제대로 청소를 할까 싶다가도, 아니면 거미줄 만이라도 걷어낼까 싶다가도 굳이...

살다보면 실수, 아 이젠 실수가 아니게 되었지만 창문을 열고 닫다보면 자연스레 사라질텐데

그냥 좀 더 기억 속에 두기 위해 그가 떠난 거미줄을 내버려두었다.

사소한 기억이 더 중요한 기억의 끈이 되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겨두기 위해서.




거미가 사라진 것이 확실해지고, 겨울이 되었다.

2025년이 끝나갈 무렵, 기억에 남기기 위해 참석한 <팔레스타인 시선집> 낭독회

번역에 참여한 몇 분이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각각 번역한 시 중 두 세편을 선정해서 낭독을 하는 자리였다. 마지막 시는 참석한 모두와 함께.


얇은 시집이있지만 남은 시들을 모두 읽는데는 한 해가 넘어갔다.

그 중 '그 거미'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있었다.




<미메시스>

- 파디 주다 Fady Joudah -


딸아이가

거미 한 마리를 해치지 않는다

자전거 손잡이 사이

집을 지은 것이었는데

꼬박 이주일을

아이가 기다렸다

거미가 스스로 떠날 때까지


거미줄을 허물면

거미도 알 거야

집이라 부를 수 없는 곳이구나

그럼 네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단다

일러 주자


딸아이가 말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난민이 되는 거 아니에요?



*번역 류송

주다의 영어 시집 『빛에 타 Alight』(코퍼 캐년 프레스 Copper Canyon Press 2013)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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