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 15년 만의 서울 복귀.
금의환향이었으면 좋겠지만, 피투성이 패잔병의 귀환에 더 가까웠다.
전장에서 탈출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 ‘살았다’는 마음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는 병사의 자세로. (그렇게 돌아온 고향도 결국 전장이었지만...)
상처투성이 병사가 먼저 찾아간 곳은 ‘책과 운동’이라는 이름의 병원이었다.
정말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죽는다는 말’을 멀쩡히 살아있는 내가 입에 올린다는 것이 너무 가소롭고, 무례한 일일지라도 그때의 나에게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책을 읽었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냥 결심만으로는 안될 거라는 나를 잘 알기에 자본주의의 위대한 동기 ‘돈’을 쓰기로 했다. 회사에 헬스장이 있어하고 싶을 땐 할 수 있기도 하고, 웨이트는 아직 내 몸 상태에는 무리라는 생각에 헬스장, PT는 제외했다. 세수를 하면서 허리를 굽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어깨도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불편했다. 뭔가 재활 느낌의 운동이 필요했다.
요가도 잠깐 생각했으나 통나무 몸이 도전하기에는 너무 높은 산이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자주 보이던 필라테스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가 좋을까 집 주변을 살폈는데 생각보다 필라테스 센터가 많았다. 그런데 그만큼 여성전용도 많은 게 문제였다. 필라테스는 사실 남자가 만들었다던데... 그냥 출근길 지하철 옆에 있는 새로 생긴 필라테스 센터로 갔다.
맛보기 1:1 수업을 하고 등록 상담. 그런데 남자는 그룹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돈을 투자한다고는 했지만, 1:1을 지속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건물 앞 현수막에는 부담 없는 가격을 소구하고 있었는데, 그건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음은 작은 건물로 조금 낡아 보였지만 아담한 꽤 오래전부터 보였던 근처의 센터로 갔다.
여기는 원장님이 남자였다. 괜찮겠다 싶었다. 생각대로 남자도 상관없었고 그룹도 3:1이었다. 사실 기구를 더 놀 공간이 없어서 그럴 정도로 작은 센터였다. 그게 오히려 맘에 들기도 했다. 가격도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 딱 아슬아슬 그 정도? 집에서의 거리도 그렇고, 일단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어서 체험 수강 후 바로 정식 등록을 했다.
원장님이 해주시는 1:1 수업을 몇 번 해서 적응을 하고, 그룹으로 넘어갔다.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앱으로 2주마다 시간표가 열리고 회원이 알아서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내 일정에 맞추어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약이 결국 선착순이다 보니 인기 있는 시간대는 금방 자리가 차서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격주로 예약이 열리는 토요일 3시가 되면 대학교 때 수강신청하는 느낌의 긴장감이 있었고, 예약 순서의 전략도 필요했다. 나는 퇴근을 고려해 밤 9시 20분에 시작하는 마지막 타임을 주로 하곤 했다. 요일도 일주일 두 번을 목표로 하다 보니 보통은 월요일과 금요일이 주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에 자주 보는 회원분들이 생기게 되었다.
햇수로 2년이 되니 몇 달 정도만 보는 분도 있지만, 1년이 넘게 보게 되는 분들도 생겨서 인사 정도는 하게 되었고, 가끔씩 간식을 가져와 나누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사실 의도적인 것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친숙한 관계를 만들어서 나의 상황을, 문제를 홍보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름 <면접교섭> 다큐멘터리가 개봉되는 시점에 맞추어 주위에 열심히 알리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나의 소소한 빌드업이랄까.
그렇게 2025년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알리기로 했다.
가벼운 인사와 안부 정도 물을 수 있는 9시 수업에서 회원분과 강사님, 원장님에게 협회 리플릿과 영화 엽서 굿즈를 나누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강사님이나 회원분들도 따뜻하게 듣고 반응해 주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어두운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화제가 나이로 옮겨가면서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면서 구태여 나이를 알아내려는 여성분의 집요한 질문 “그래서 몇 살이에요?” 결국 답을 알려주고, 웃으면서 운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후 내가 주로 가게 되는 월/금 9시 시간의 단골 멤버들은 좀 더 편하게 서로에 대해 묻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다. 강사님도 나와 함께 여성 회원 J님, 남성 회원 S님을 9시팸이라고 부르면서 이 멤버가 제일 재밌다고 이야기하신다.
이제는 편하게 아이와의 면접교섭 이야기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
힘들다는 투정도 자유롭게 하고, 농담을 섞어가며 우리들의 상황에 맞게 운동 시퀀스도 바꾼다. 2년을 했는데 아직도 몸이 뻣뻣하다는 나의 불만에는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많이 좋아졌어요. 전에는 내가 처음 봐서 안 친할 때는 막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 ‘여름이님, 쌤 말이 맞아요. 첨에 봤을 땐 얼마나 웃겼는데’ 라며 가차 없는 평가도 부담 없이 던진다.
때로는 너무 편한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운동의 상쾌함에 더해 관계의 편안함도 함께 하며,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독이는 필라테스 수업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의 일정이 늘 같을 수는 없기에 수업 예약의 자유는 만남의 빈도를 조절하며 이 적절한 균형을 자연스럽게 도와준다.
이런 친밀함은 또 뜻밖의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마지막으로 9시 수업에 도착을 했는데 수업 시작 전 9시팸 멤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에요? 나도 알려줘요”
“S님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온대요.”
아마도 J님의 유쾌한 수다에서 시작되었겠지. 나도 얼른 검색을 시작했다. 바둑기사 OOO 9단!
오, 세상에! 어릴 적 아버지와 삼촌에게 바둑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바둑책을 사서 보기도 하던 어린 시절. 지금은 바둑을 두지 않기도 하고 어쩌다가 바둑 기사가 눈에 띄면 반가워하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유명한 영화배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 아이한테 이야기하면 재밌겠는데요. 저 S님, 친구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아, 네, 괜찮습니다.”
이렇게 우연 같은 만남은 아이와의 +10초를 책임져 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필라테스를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원 지하철의 사람들이나, 광장의 거대한 군중, 서울/수도권에 삶의 터전을 둔 천만이라는 숫자를 볼 때마다 느끼는 어떤 괴리감이 있었다. 도대체 이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 어떻게 존재하는 거지?
운동을 하면 바로 옆에 있는 분들의 사연을 듣게 될 때가 있다.
출산을 하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앞두고 몸을 만들기 위해서, 아픈 몸의 재활을 위해서,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네일아트 일을 한다던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던 분, 회사원, 자영업, 에이전시, 유아발레 등 그렇게 내가 괴리감을 느끼던, 숫자로 이미지로 각인되었을 뿐인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면서 각각의 ‘당신’으로, 내 옆의 이웃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상투적이지만, 우울이나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일단 나가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건 진리 같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AI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람 간의 접촉이 필수가 아닌 것 같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몸을 움직여 사람을 만나고, 화면의 빛이 아닌 그 사람에게서 반사된 빛을 직접 보고, 나와 당신이 함께 숨 쉬는 같은 공기의 떨림을 통해서 전달되는 목소리를 듣는 것. 그건 정말 다르다.
그렇게 마주치는 사람들의, 정말 나에게는 운이 좋게도, 그 다정한 마음들이 나를 살게 하고, 지지해 준다.
사진으로 보는 명화가 아니라 캔버스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눈앞에 마주한 것 같은 경이.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따뜻한 공간.
아무래도 이 9시팸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주도 수강신청 알람을 잊지 말아야겠다.
@창밖은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