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꺼내는 이름 프롤로그

유산 후 이어 쓰는 기억일기 / 프롤로그 나의 사랑 온동이에게

by kami



온동이는 내게 찾아온 두 번째 아이의 태명이었다.첫째 아이가 “온유의 동생이니까, 온동!” 하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남편과 나는 둘만 있을 때는 ‘복덩이’라고도 불렀다. 온동이가 찾아온 후 우리 집엔 눈에 보이는 제법 ‘복’ 같은 일들도 생겨났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앞으로의 시간 속에 상실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나는 자카르타에 산 지 십 년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산모들이 출산 후 조리원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조동(조리원 동기)’이라는 말도 있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고 함께 새벽 수유를 하며, 울고 웃으며, 전우애처럼 깊은 유대가 생긴다고 한다.


유산을 하면, 조리원이 없다. 기꺼이 회복을 도와주는 곳도, 같은 시기를 함께 견뎌준 동기도 없다.

누가 만든 기준인지 모를 ‘빠른 회복’만이 당연한 듯 권유된다. 아픔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오히려 민폐처럼 여겨진다.


아기를 보내고 혼자 미역국을 먹어야만 하는 산모는 어떤 마음일까 짐작조차 못했었다. 젖을 물릴 아기는 없는데도 돌아오는 젖을 막기 위해 약을 먹는 심정은 또 어떤가. 우리 아기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알고리즘은 임산부에게 좋은 음식을 소개하고 출산 준비를 하라고 재촉한다. 몸은 천천히 회복되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의 삶을 빌려 살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잃었어도, 굳이 아픔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보통은 침묵을 선택한다. 몸은 조용히 회복되지만, 마음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그러던 중 친구가 자신도 나와 같은 경험이 세 번 있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로 온동이를 추억하고 싶을 때면, 이 친구의 집 벨을 누르곤 했다.“왜 왔어?” 묻지도 않고 그저 말없이 울어주고, ‘기억’을 나누게 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건 나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용히, 말없이 아기를 떠나보낸 ‘우리’의 이야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어딘가 분명 존재할 ‘유산 조리원 동기’들에게 작은 쪽지처럼 건네는 우리들의 기록이다.


아기를 기다리며 썼던 미완의 태교일기를 보며 울기도 했지만 웃기도 했다. 남은 건 상실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기억이 흐려지는 것이 걱정되어 적었다. 이제는 다들 내가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는 듯해서 혼자 온동이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함께한 짧지만 온전했던 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기록이 나를 살게 했다.

울면서 써 내려가는 그 시작이 치유의 첫걸음이 되었다. 그 모든 시간 끝에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글쓰기뿐이었다. 마침내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 얼마를 있었든, 그 생명은 분명히 ‘왔던’ 존재다. 애써 슬픔을 서둘러 딛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기억해도 되는’ 존재다. 부르고 싶은, 불러야 할 이름이 있는 엄마이다.


오랫동안 꺼내지 못한 어쩌면 덤덤한 침묵을 선택한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당신에게 왔던 상실에 대해 말해달라고. 이 침묵을 함께 깨 보자고. 기억하고 있다고, 함께였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제, 이 기록이 당신에게도 작은 숨구멍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서로의 ‘유산 조리원 동기’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이 책을 만들어 준

나의 작고 귀여운 아기 천사 온동아.

엄마는 너를 만나기 전부터 널 기다렸단다.

너는 짧게 머물다 갔지만, 그 짧음 속에 담긴 기쁨과 사랑은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커.


네가 머물렀던 일곱 달, 엄마는 삶의 새로운 차원을 배웠어. 고통과 기쁨이 어떻게 한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사랑이 얼마나 깊고 조용한지, 기억이 어떻게 생명을 품을 수 있는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엄마의 글을 읽어 주는 첫 번째 애독자가 되어줘. 정말 잘 왔고 잘 다녀갔어.

매일매일 더 사랑해.



<네가 빛으로 느껴졌던 어느 날 오후 풍경>


#유산 후 쓰는 기억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