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암인가요?
임신이었다. 내가 알기 전, 몸이 먼저 알려주었다. 입맛이 사라지고, 좋아하던 커피 잔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오후가 되기도 전에 스르르 졸음이 쏟아졌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테스트기를 들었다. 언제나 선명한 두 줄이 떠올랐다.
남편은 한동안 말을 잃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고민이 밀려왔다. 초등학교 4학년 온유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할까. 카드를 쓸까,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할까.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병원 예약을 대신 잡아준 남편은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정했다. 혼자 가지 않기로.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온유는 동생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확고했다. 아직 유치원생이던 시절부터 친구들이 동생이 생길 때도, 언제나 자기 자리가 위협받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그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조차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뿌듯해하던 모습이 선했다.
이런 기억들이 마음을 맴돌았다. 예약일이 가까워질수록 조심스러움이 커졌다. 결국 조용히 아이에게 병원에 함께 가자고 했다. 아이는 의아해했지만, 내가 몸이 조금 안 좋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아침, 아이를 깨워 병원으로 향했다. 산부인과 복도는 산모들로 가득했다. 온유는 병동 주변을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조용히 접수대로 향했다.문진표를 건네받자 온유가 먼저 나서서 데스크에 갔다.
영어로 또박또박 설명하는 아이의 작은 등이 낯설 만큼 의젓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는 이 층은 산부인과와 소아과병동이라고, 우리가 잘못 찾아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없었으면 엄마가 또 우왕좌왕했을 거라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 엄마와 닮아 있었다.
진료실 문이 열렸다. 십 년 전 온유를 받아준 로버트 박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박사님이 방문 이유를 물었고, 나는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인도네시아어로 조용히 말했다. 임신한 것 같지만 아이는 아직 모른다고, 내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간이커튼 뒤로 들어가 진찰대에 누웠다. 박사님의 손길이 내 배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박사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분명히 있다고, 다시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대화가 몇 차례 반복되었지만 묘하게 평안했다.
잠시 후, 박사님의 얼굴에 미소가 찻물처럼 번지더니 깊은 산속에서 귀한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크게 소리쳤다. “Ada! Ada!”(있어요! 있어요!)
나는 그제서야 승리자가 된 듯 의기양양하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커튼 밖에서 기다리던 온유는 여전히 상황을 가늠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차에 올라서야 나는 초음파 사진을 온유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온유는 사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굳어갔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의 입술이 떨렸다.
알고 보니 온유는 그동안 속으로 무거운 걱정을 품고 있었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 했던 날들, 자주 누워 있었던 모습, 평소 즐겨 먹던 커피와 과자까지 멀리했던 모습이 어린 마음에는 병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혹시 내가 큰 병에 걸린 건 아닐까 두려워하며 혼자 속앓이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가 같이 병원에 가자고 했으니…
그제야 안심한 아이는 눈물을 터뜨렸다. 내 품에 안긴 온유의 어깨가 조용히 흔들렸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이제 괜찮아졌으니 가장 맛있고 비싼 점심을 사달라고 말이다.
온유는 그토록 소원하던 호텔 뷔페를 먹으며 그동안 엄마가 혹시라도 암이라도 걸렸으면 어쩌지 마음고생한 이야기를 다시 쏟아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생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핸드폰 사용 금지, 영상 시청 제한, 과자 금지 등 하나씩 규칙을 이야기하는 온유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동생의 이름도 지어주었다.
“태명은 뭘로 할 거야? 온유의 동생이니까, 줄여서 온동이라고 하자.”
그날 밤,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동생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나는 문틈 너머로 그 나지막한 속삭임을 들으며 아이의 숨결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한 번씩 다녀간 존재들이 남기고 간 따뜻한 숨결을 품고 걷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생명이 보여준 사랑의 얼굴을 우리는 그때 처음 만났고,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도 그런 조용한 사랑이 있을 것이다. 오래 가지 못한 시간이었기에 오히려 더 단단히 가슴에 박힌 이름들. 그 이름들이 만들어준 온기를 잃지 않는다.
이따금 이름을 부를 때면 여전히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작고 작은 존재가 오래 남아주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이름을 품고 오늘도 조용히 다음 계절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