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누군가 대신 울어준 날

이름도 모르는 손이 건넨 위로

by kami

악몽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흐려질 즈음, 마취의 안개를 뚫고 귀가 먼저 깨어났다. 눈을 뜨니 현지인 간호사가 서 있었다. 어색하지만 진심이 닿은 눈빛이었다. 괜찮냐는 질문에 나는 엉뚱하게 “나는 크리스천이에요”라고 말했다.


말이 나보다 먼저 방향을 틀어 떠나버린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저 그녀가 나가주길 바랐다. 남편은 어디 있냐고 묻자, 간호사는 벼락같은 말을 전했다.


수술이 갑작스러웠던 것처럼, 바로 출생신고와 사망신고, 그리고 장례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남편은 급히 서류를 준비하러 갔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왜 이런 절차가 있다는 걸 수술 전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지금 무엇이 바뀔까. 나는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남편은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을 들었고, 장례 준비를 위해 집에서 옷을 챙기러 갔다고. 걱정 말라고. 곧 올 거라고.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나를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장례’라는 단어가 병실의 공기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 생각은 너무 철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필요하면 부르겠다고. 남편이 오기 전에, 마음껏 울고 싶었으니까. 여러 번 눈빛으로 “나가달라”라고 했지만, 간호사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입을 떼려던 순간, 그녀가 먼저 말했다.


"같이 울어줄게요. 당신은 울어야 돼요. 이건 아주 큰 일이라고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못 들은 척했지만,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이건 울어야 되는 일이에요. 혼자 울려고 하지 마세요. 같이 울어요.”

나는 속으로 반발했다.‘당신이 뭘 알아. 나는 당신 이름도 몰라. 내 마음을 왜 판단해?’


그렇게 마음의 벽이 본능처럼 세워졌다. 그러나 그녀의 까만 눈동자 속에 비친 나는, 오히려 쏟아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정적이 길게 이어졌고, 그녀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병실 문이 열리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간호사에게 큰일이

난 줄 알 정도로, 그 울음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울음을 가만히 듣다가 나는 조용히 끌려들어 따라 울었다. 우리는 얼마나 울었는지, 언제 멈췄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의 시간은 대개 길이를 남기지 않는다. 울음이 가라앉자, 간호사는 눈이 벌겋게 부은 얼굴로 호출벨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혹시 언제라도 또 울고 싶으면 눌러요. 이곳에 있는 동안 언제든지 같이 울어줄게요. 나는 알라를 믿지만,

내 신에게 당신이 아프지 않게, 당신 아기가 좋은 곳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할게요.”


그녀의 손등이 천천히 따뜻해졌다. 울음은 멎었지만,

방 안엔 울음의 잔향이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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