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용히 나를 일으킨 사람

니아이야기

by kami

수술 후 집으로 돌아온 나를 돌봐준 사람은, 친한 친구 집에서 일하는 현지인 가사도우미 ‘니아’였다.
한국으로 여름휴가를 떠난 친구는, 내가 온동이를 떠나보낸 큰일을 겪었는데 곁에 있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미안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못 해줘서 너무 미안해… 니아라도 네 옆에 있게 하고 싶어.”

그 마음을 대신 전하고 싶어 친구는 니아를 보냈다.나는 친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마음을 받았다.


그렇게 니아가 내 곁으로 왔다. 니아는 나를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음식을 잘 먹지 못하던 나도, 니아가 해주는 음식은 이상하게 입맛에 잘 맞았다.

약 한 달 동안 니아는 친정엄마처럼 내 곁에 있었다.사실 친정엄마가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크게 무너져 있었고,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함께 울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남편도 더 이상 휴가를 연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렇게 비어버린 자리를 니아가 조용히 대신 채워주었다.니아는 미역국을 끓이고, 과일을 깎고, 딸을 챙겨주었다. 말동무가 되어주고, 내가 소리 없이 울면 조용히 문을 닫아주었다.


말이 부족해도 마음은 충분했다.첫째 출산 후 친정엄마가 와 계셨을 때보다 이상하게 마음이 더 편안했다.뒤늦게 걸려오는 친척들의 전화, 임신을 축하하던 지인들의 연락이 오히려 더 버거웠던 날들 속에서 니아만은 내 호흡에 맞춰 곁을 채워주었다.


친구네 집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오자,니아는 이틀 전부터 내가 임신했을 때 유독 잘 먹었던 소또 아얌(닭국물요리)을 곰탕처럼 진하게 끓여 식혀 소분해 냉동실에 채워두었다. 창문을 닦고, 다림질하지 않은 옷까지 하나하나 펴서 다려놓았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며 함께 수다도 떨고,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눌러두었던 말이 튀어나왔다.

“넌 내 엄마였고, 언니였고, 의사였고, 교회 집사님이었어. 고마워.”

니아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아가 떠난 뒤 며칠 동안, 나는 냉동실에 담긴 소또 아얌을 데워 먹었다.숟가락을 들 때마다 그녀가 두고 간 온기가 천천히 번졌다.그 온기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나를 지키기 위해 두르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껍데기는 알고 보니 나에게 더 무게만 더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곳에 살면서도 내가 선을 긋고 피하려 했던 인도네시아 사람에게서 이런 위로를 받게 될지 몰랐다

언어도, 문화도, 국적도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사람에게로, 마음은 마음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그 오래된 진실을, 나는 그제야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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