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 문턱에 머물렀던 하루
온유는 친구 집으로 갔다. 남편과 나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금세 도착할 길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은 “힘들지?”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차가 천천히 가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따라잡을 시간이 조금 더 생긴 것 같아서. 창밖에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빼곡했다. 나는 병원으로 가는데,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저 중엔 아기를 품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삶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데, 나는 지금 이 작은 몸을 떠나보내러 가는 길이라는 게 이상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몸은 이미 복도에 들어섰는데, 마음은 아직 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두 번이나 다른 층에서 엉뚱하게 내렸다가 돌아왔다. 병실에 들어온 뒤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벚꽃 자수가 촘촘히 놓인 연분홍색 환자복. 십 년 전 온유를 낳았을 때 입었던 연보랏빛 옷보다 훨씬 화사했다. 그 밝은 색이 오늘의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마치 지금의 나와는 다른 세계의 옷인 것처럼.
담당의사도 도착하기 전인데, 잠시 후 지인들이 첫 팀으로 들어왔다. 병실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그들의 눈빛이 나를 보며 조금 흔들렸다. 말을 아끼려는 입술, 내 손을 잡는 손등의 온기. 몇 번의 유산을 겪었던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아픔을 오래 알고 있었던 듯하면서도, 오늘에서야 제대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잠시 뒤 또 다른 팀이, 그리고 그 뒤로 또 한 팀이 찾아왔다. 하루 동안 세 팀, 일곱 명. 그중 네 명이 유산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한 번, 누군가는 세 번.
사람들이 내 곁을 향해 모여드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럼에도 같은 순간 문득 스쳐 지나간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너는… 왜 도대체 가야만 했니.”
슬픔은 그런 식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따뜻함에 데일 듯이 마음이 흔들릴 때, 불쑥 원망이 올라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라앉았다.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생각이 내 마음의 경계를 천천히 다시 세웠다. 지인들은 손에 음식을 잔뜩 들고 왔다. 누군가는 미역국을 꺼냈고, 누군가는 “언제든 먹으라며” 오트밀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라며 작게 포장된 떡들을 펼쳐놓았다.
떡은 원래 생일이나 백일처럼 ‘무언가가 자라는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인데, 오늘의 병실 위에 놓인 떡은 이상하게도 ‘도착하지 못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이 나를 잠깐 멈춰 세웠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을 보며, 오늘 이 방에서만큼은 온동이가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담당의사가 교통체증으로 늦는다고 간호사를 통해 소식을 전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천히 배를 쓸었다. 온동이는 그곳에 있었다. 이 자리가 곧 비게 된다니, 그렇다면 온동이는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렇게 마음이 한 번 완전히 뒤집히고 나서야 나는 다시 조용해졌다. 나를 지키는 일과 온동이를 보내는 일이 서로 반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더디게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