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에필로그

by kami



“여름 중에님, 한국에 계시면 우리 만날까요? 아기와 함께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름휴가를 앞두고, 갱이님에게 연락이 왔다.그녀는 지난 4월, ‘봄, 딱 한달 폭싹 쓰겠수다’에서 처음 만나 함께 글을 써온 분이다. 글로만 마음을 나누다가 실제로 만난다니 반가웠다.

아기를 데리고 나온다고 했는데, 나 괜찮을 걸까.마음이 먼저 조심스러웠다.

카페 올리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갱이님과 유모차에 누운 찬이가 보였다. 작고 동그란 찬이의 얼굴은, 맑은 물 위로 번지는 빛결 같았다. 아기의 눈은 너무 정직해서, 방금까지 맴돌던 내 마음이 그대로 비쳐나는 듯했다.나는 그 시선을 오래 붙잡은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온유와 나는 누가 먼저 찬이를 안을지 장난처럼 다투었다.마침내 내 품에 안긴 찬이는 눅눅한 여름 공기 속에서 오히려 숨을 고르게 해주는 작은 리듬 같았다.그 작은 숨결이 내 가슴 위에서 오르내릴 때, 마음은 울음 대신 고요에 잠겼다. 온유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아주 작게, 오래 미뤄둔 무언가가 있었다.

함께 식사하며 우리는 글을 쓰게 된 이유와 각자 지나온 삶에 대해 나누었다. 찬이와 눈을 맞춰가는 도중에도 대화는 깊어졌다. 갱이님은 음식을 절반 이상 남기더니, 조심스레 둘째 소식을 전했다. 한 생명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바로 축하를 하고 싶어서 카페에 남아 있던 쿠키를 전부 포장해 건넸다.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으며, 온유가 찬이의 유모차를 밀어주었다. 오래 마음속에 그려왔던 풍경이 겹쳐졌다.온동이의 유모차를 온유가 밀고 가는 모습을 상상해왔었는데, 지금은 다른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숨이 한결 고르게 쉬어졌다.

그날, 찬이에게 무엇이든 하나 건네고 싶었다.나는 어느새 내복 가게로 들어가 있었다. 하늘색과 핑크퐁 무늬 두 벌을 망설임 없이 골랐다. 계산대에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찬이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

며칠 뒤, 갱이님이 내가 선물한 내복을 입은 찬이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열자마자 온유를 불렀다.


[다시 꺼내는 이름] 이 글을 쓰는 동안, 오래 미뤄두었던 작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통과했다. 함께하지 못했던 마지막 순간을 이제야 따라가 본 셈이다.

돌아보면, 글이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 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눈을 돌리고, 마음을 닫은 채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기록은 침묵을 덜어냈고, 나를 다시 불러냈다.

무엇보다 나와 온동이를 같이 읽어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울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봄부터 곁에서 손을 잡아 준 숙성반의 벗들. 갱이, 다시 봄,난나,맑은,유니크한 J,이불,글의 길을 밝혀준 나의 선생님 김정주 작가, 시차를 뚫고 매일의 숨을 함께 해주며 다정함으로 안아준 반려산소통님.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을 조용히 지켜주고 응원해준 내편인 남편과 온동이 언니 온유에게 참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기록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낸 시간이다. 여름은 이렇게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살아간다. 우리의 씨앗은 지금도, 조용히 자라고 있다고 믿기에.

나는 그 곁을 지킨다.
조용히,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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