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차 같은 헌차 드림합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축하만큼이나 ‘드림’도 많이 받았다. 임신·출산책부터 목욕통, 옷, 식탁의자, 신발까지 필요한 건 거의 다 들어왔다. 다들 자기 기준으로는 깨끗하게 썼다고 했고,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넙죽넙죽 받았다. 첫딸인데도 거의 중고로 키웠다.
온동이를 임신했을 때는 이번만큼은 우리가 직접 고르고,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물려줄 만한 이들도 없었고, 거절하기 어려웠던 시절도 지나 있었다. 우리는 외출할 때마다 슬쩍 육아용품 가게를 들렀고, 그날 기분에 따라 온동이의 물건을 하나씩 골랐다. 토끼 모양 손수건, 하트무늬 속싸개, 요일별 바디슈트, 심지어 백일 드레스와 돌파티 옷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곧 사랑이었다.
그중 가장 신중했던 건 유모차였다. 첫째 때는 제법 오래된 중고 유모차를 물려받아 사용했는데, 혼자 다닐 땐 괜찮았지만, 엄마들 모임에 나가면 내 아이의 유모차는 단박에 눈에 띄었다. 진한 초록 바탕에 하얀 고동색 땡땡이 무늬. 칠남매 막내가 탈 법한 유모차 같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터울이 좀 있나 봐요? 위에 오빠요? 고학년쯤 됐겠네요?”
이번엔 꼭 새 유모차를 사고 싶었다. 마음에 쏙 드는 모델이 있었지만 가격이 꽤 부담스러웠다. 마차처럼 생긴 유모차에 온동이를 공주처럼 눕히고 시원한 백화점 매장을 누비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느 날은 꿈속에서도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유모차 샀어요? 중고나라에 지금 대박 유모차 떴어요. 세컨이라 집 안에서만 끌었대요. 사진 보니까 거의 새 거예요! 제가 바로 찜해놨어요. 이런 건 고민하면 안 돼요. 지금 바로 입금하셔야 해요!”
그 유모차는 바로 내가 눈여겨봤던 그 모델이었다. 가격도, 상태도, 타이밍도 완벽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입금했다.
퇴근한 남편이 들어섰을 때, 베이지색 유모차는 거실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새 차 쇼룸의 전시차처럼.남편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새 거 사기로 했잖아. 왜 중고야?”
“이거 새 거 같은 중고야. 가격 들으면 깜짝 놀랄걸?”
남편은 유모차 커버를 벗기며 말했다.
“잘 샀네. 내가 새 것처럼 만들어줄게.”
깨끗하게 목욕한 유모차는 안방 침대 옆, 빈 공간에 ‘주차’됐다. 온동이 전용 자리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유모차를 연결해준 지인과 고마운 마음으로 코다리찜을 먹으며 웃기도 했다. 아기 인형을 앉혀 집 안을 돌며 ‘온동아, 나가자’ 하고 불러보면 마음에 평화 같은 것이 깃들었다.
그날따라 대리석 바닥이 유난히 차가웠다. 에어컨을 켠 것도 아닌데 발바닥에 닿는 냉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유모차 손잡이를 쥐었는데 손끝까지 서늘했다. 이유는 몰랐다. 다만 그날의 공기만은, 오래 내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출산을 앞 둔 두 달 뒤, 온동이를 떠나보냈다.몸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지만, 침대에 누울 때마다 유모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저 바라보는 정도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러 시선을 피하게 됐다. 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면 괜히 유모차를 피해 걷게 되었고, 자다가 눈을 떠도 그 자리에 있는 유모차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어느 저녁, 갑자기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아 뭐 어쩌라고, 왜 쳐다보는데. 왜 자꾸 거기 있어!”
나도 내가 놀랐다.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미안해, 온동아. 엄마가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혹시 너, 내가 새 거 안 사줘서 속상했던 거야?’
유모차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이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지니 너도 당황스러웠지? 나도 그래…’
그날 유모차는 유독 무거웠다. 손을 떼고 돌아서는데, 내 그림자까지 함께 눌린 듯했다.
며칠 뒤, 샤워를 마치고 누우려는데 유모차에게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아주 담담했다.
“여보, 이거 치워줘. 보기 싫어.”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유모차를 분리해 거실로 옮겼다.
그 순간, 최근 임신 소식을 전한 지인이 떠올랐다.
“이거 동찬씨 드릴까? 우리 아이 물건이라 부담스러워하실까?”
“필요하시면 받으시겠지.”
남편의 말이 담담히 울렸다.
잠시 뒤, 동찬씨에게 “고맙게 받겠다”는 답이 왔다.
유모차를 보내기로 했다. 그 결심이 입안에 쓴맛처럼 남았다.
유기농 로션과 목욕용품, 온동이 옷과 이불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손끝으로 천을 펴고 접는 동안, 마음이 흔들렸다가 다시 평온해졌다가를 반복했다. 상자 위엔 메모지를 붙였다. 지인 아이의 태명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에서 따온 ‘보하’.
태명이 이렇게 지어질 수도 있구나 싶다가, 문득 ‘온동이’… 아니, 우리 복덩이에게 미안해졌다.
‘보하에게.’
그렇게 유모차와 출산용품을 보냈다. 유모차가 빠진 방은 이상하게 넓었다. 그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습관처럼 빈 배에 손을 얹었다.
‘좋은 거 사줬는데, 한 번은 좀 타보지 그랬어.’
속으로 온동이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 이게 너의 첫 유모차이자 마지막 유모차가 될 줄은 몰랐어.’
해가 느리게 저물던 오후였다. 보하 엄마 아빠가 고맙다며 따뜻한 차를 선물해줬다. 유리잔 안에서 김이 부옇게 피어올랐다. 손끝이 데일 만큼 뜨거웠지만, 그 온기가 고마웠다.
나는 조용히 티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 가득 번지는 열기에 마음이 조금 녹았다.
‘온동아, 너도 이런 따뜻함 느끼고 있지?’
아무 말 없이 유모차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