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존재의 온전함

시간과 비석, 그리고 다시 이름으로

by 황지윤


지난달, 친한 친구로부터 ‘출생신고서’라는 기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세상에 처음 내 이름과 존재를 알린 유일한 문서. 출생신고서.


1995년생은 올해 12월까지만 원본을 열람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파기된다는 이야기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하나둘 자신의 고향으로 향했다.


내 고향은 푸르고 예쁜 바다가 보이는 포항이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거리가 있어 하루를 내야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꼭 가보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한 번쯤은 내 뿌리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포항에서 마주한 나의 출생신고서.
아버지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적어 내려간

내 이름과 출생 정보가 적혀 있었다.
종이 위에 남겨진 내 존재는 생각보다 작고 담담했지만,

이상하게도 신기하고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특히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이름이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부르는 말이자,

내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핀 들꽃에도 저마다의 이름이 있듯이,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생명을 이름으로 불러 그 자체로 존재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언어를 배울 때는 사소한 단어들이 쉽게 잊히는데,

사람의 이름은 유독 빨리 기억난다.
아마 이름은 뜻보다 먼저 사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할 때,

그 사람의 얼굴과

첫인상, 함께 느꼈던 감정, 관계의 거리감과 온도를

무의식적으로 함께 저장한다.


그래서 이름을 부른다는 건

단순히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다시 불러내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을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우리는 언어보다 사람을 먼저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 싶어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비석에 이름을 새기며 흔적을 남기려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부족함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남기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예전엔 존재를 남기기 위해 시간을 생각했고

지금은 존재를 믿게 되어 이름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가 지어준 그 이름처럼,
지혜롭고 윤택하게 내 존재를 빛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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