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나는 네가 좋아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조카의 발표회 영상을 보았다.
콩콩 뛰며 작은 입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유난히 순수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때 처음 엄마와 떨어져 어린이집에 가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와 떨어지는 경험이 처음이었고, 그땐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매일같이 가기 싫다며 울었다.
수업 도중, 창문 밖으로 엄마가 잠깐 보였을 때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던 기억도 있다.
어릴 때 “금방 다시 보잖아?”라는 말은
나에게 몇 시간이 아니라
세계가 잠시 끊어지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낯선 세상에 홀로 놓인 느낌은
어린 나에게 참 서러운 일이었다.
최근에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으며
나는 또 한 번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제법 세상을 안다고,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찾아온 이 사랑은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여섯 살의 나처럼
그 사랑 앞에서 아이처럼 울고 웃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발견했다.
더는 유치하게 울지 않겠다고,
질투나 서운함 같은 감정은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사랑은 내 모든 약한 부분을 비추며
사랑 앞에서 여전히 나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원래 어린아이였고,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연결감과 안정감을 배우며 사랑을 키워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이 아닐까.
계산하지 않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것.
울고, 매달리고, 포기하려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향해 가보는 것.
그래서 최근까지
어린아이처럼 변해버린 내 모습이 싫었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가장 솔직하고 근원적인 사랑의 형태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나여서
조금은 좋아졌다.
아이들은 편견 없이 만나
함께 놀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며 자라난다.
성인이 된 우리도
겉모습이나 조건보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아이 같은 내 사랑도,
이제는 조금 사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