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와 애교쟁이
있지,
난 나쁜 점이 있어
난 때로는 차가워
너에게 난 어쩌면 부족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
그럼,
넌 내 부족한 모습마저도
괜찮아?
「응.」
맞아, 사실 말이야..
난 너한테 사랑받고 싶은가 봐
내 모습 이대로
작년 여름부터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와 같은 시기에 운동장에 나타난 고양이들이 있다.
그중에서 지금까지 나와 친해진 고양이는 두 마리다.
한 마리는 고등어 무늬를 가진 녀석이고
다른 한 마리는 온몸 전체가 갈색털인 녀석이다.
고등어 무늬를 가진 아이를 나는 '애옹이'라고 부르고,
갈색털을 가진 아이를 나는 '귀요미'라고 불러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귀요미는 애교가 넘치는 고양이이고,
애옹이는 비교적 담백한 성격의 고양이다.
애옹이는 애교가 많지도, 살갑지도 않지만
매일 저녁 운동장에 나오는 내 얼굴을 기억해서인지
이름을 부르면 조용히 다가와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반면 귀요미는 다르다.
다가오자마자 온몸을 비비고
귀여운 울음소리로 애교를 부린다.
그런데 나는 한동안
귀요미를 ‘얍삽이’라고 불러왔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리 불러도 모른 척하다가,
애옹이가 나와 먼저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면
쏜살같이 달려와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기 머리를 내게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애교는 없지만 늘 부르면 다가오는 애옹이가
더 의리 있고, 더 진심 같다고.
하지만 그 생각은
언제까지나 나의 기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께,
사랑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고백했다.
그러다 문득,
부족함을 숨기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해 뒤에
문득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얍삽이’라 불리던 고양이는
사람이 여전히 무섭고 두렵지만
사랑은 너무 받고 싶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용기가 없어 다가가지 못하고,
누군가 이미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그 곁으로 달려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츤데레 애옹이는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귀요미는 그 자리에서
애교쟁이가 되어 마음껏 머리를 쓰다듬받는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연약함과 경계심을 알고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기회주의적’이라는 색안경으로 판단했다.
사랑 앞에서
나 또한 부족한 채로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뒤에서야
이해되지 않던 행동들이
단지 사랑을 갈망하는
한 생명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은
완전해서 건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채로도
조심스럽게 건너가 보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