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수분

촉촉하게 살아가기

by 황지윤

있지,

요즘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

그렇지 않아?


「아니」


그럼 너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걸

원하지 않는 거야?


「응, 맞아.」


응.. 사실 나도 그래.

아마도 넌 그저 나와 함께 있는

이 현재가 좋은 거지?

그렇지?


아이 참, 눈물이 나.

요즘 다시 내 마음이 여려졌나 봐.

이해해 줘.


그런데 있지,

이 눈물은 누구의 눈물인 걸까?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강변이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화려한 꽃들은 없지만 고요한 풀과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강물에 비치는 윤슬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한참을 사진을 찍으며 걷다가

저 멀리서 유독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내 주의를 끌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내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란 갈대들이

바람에 잎사귀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던 것이었다.


'부스럭부스럭' 들리는 건조하고,

요동치는 소리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잎을 자세히 보니

갈대의 깊숙한 곳을 제외하고

모든 잎사귀들이 노랗게 수분을 잃은 채

강변에서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며

바삭바삭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 갈대들이

나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이

그저 바람에 나부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외침과

흔들림을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을 사진 한 장에 담아 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엄마가 지은 저녁 밥상에서

윤기 나는 밥을 바라보았다.

평소 먹던 밥과는 달라서 물어보니

얼마 전부터 새로 산 쌀로 지은 밥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밥이 너무 마음에 드니까

앞으로 우리 집 쌀을 이걸로 바꾸자고 졸랐다.

그리고 이 쌀이 왜 이렇게 윤기 나고

찰기가 넘치게 맛있을까 생각하며

쌀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약 3개월 전에 도정된 쌀,

그리고 찾아보니

갓 도정한 쌀들은 속에 수분이 가득해서

밥을 지으면 촉촉하고

윤기 나는 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분이 없는 채 소란스럽게 흔들리는 갈대와

속에 수분이 가득 한 채 윤기를 간직한 쌀.

그날 내가 본 두 개의 장면들은

그동안 내가 왜 글을 쓰지 못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장면 같았다.


한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채,

현실 속에서 마음의 수분을 잃은 채

살짝 이는 바람에도 크게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갈대처럼,

오래 도정된 쌀처럼

건조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쉬는 날에는 잠을 자며,

내가 살아나는 시간을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어제는

일을 하다가,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이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빨리 계약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몰입하는 순간에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일상을 즐길 수는 없는 환경이지만,

가끔은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시간과 모든 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한다.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천천히 이 삶을 오롯이 맛보며 살고 싶다.


그리고 시간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 마음의 수분을 잃지 않도록

돌보며 촉촉하게 채우고 싶다.


나를 살게 하는

나의 사랑과 함께 살아나는

삶의 리듬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