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순간 너무나 힘들고 지쳐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웠던 당신에게
잠을 자기 직전 이런 말을 되뇌던 때가 있다. 침대에 누워 전자담배를 피우며 다가올 내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묘하게도 이런 불안감은 꼭 밤에 침대에 누우면 생겨나곤 한다. 갑자기 취업에 대한 걱정이 밀려온다. 에브리타임에서 취업 후기를 검색하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감각을 느낀다. 내 인생은 글렀다는, 호러영화적 상상에 가까운 좌절이 들이닥친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발이 차가워진다. 잠은 오지 않고 그날은 결국 내 인생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가를 따지다가 밤을 보낸다. 동트는 걸 기어코 보고 난 뒤에는 '수면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더해진다. 종종 이런 날들이 찾아온다.
여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일단 침대에 누워 전자담배를 피우는 찌질함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지쳐 눈물이 나왔던 날들, 내가 싫었던 순간들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정도의 차이, 내용의 다름은 있지만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 한 해 한 해 보내면서 친구들과 취업에 대한 거대한 불안을 공유한다. 취업을 한 친구들도 밤낮없이 일하며 사람들에 치여 점점 마음이 깎여간다. 나의 형제도 부모도, 대학에서 만난 선배도 후배도,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만난 중학생, 고등학생도,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삶에는 힘든 일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지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목격하고 있다. 지극히 사적으로 보이는 문제이지만 지극히 공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떻게 번아웃 세대가 되었나'라는 칼럼은 나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불을 붙였다. 이 칼럼은 2019년 미국의 버즈피드 뉴스에 올라온 글로, 한글 번역본을 발견해서 읽게 됐다(https://m.blog.naver.com/freely465/222021137517). 꽤 긴 글이라 지나치게 축약해서 말하는 데엔 위험이 따르겠지만, 그래도 슬쩍 말해보자면 이런 이야기다. 작가는 택배를 뜯거나 우편을 부치는 등의 사소한 잡무조차 어려워진 자신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그는 경쟁사회,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보호자에 의해 강도 높게 통제된 삶, 경제 위기 등을 번아웃을 일으키는 요소로 꼽는다. 이런 사회에서 나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쉽게 소진된다는 것이다.
칼럼을 읽고 나자 번아웃이라는 개념이 궁금해졌다. 나도 종종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딱 그때쯤 이 책이 출간됐다.
내가 궁금한 건 이런 것들이었다. 번아웃이 뭐지? 나 번아웃인가? 번아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책에서는 번아웃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 지치고 소진되었을 때 나타나는 어떤 증상 혹은 상태".
번아웃은 주로 직무와 연결돼 논의되어 왔다. 이를 측정하기 위한 대표적인 척도로 '직무소진 척도 MBI-GS'가 있는데, 한국은 전반적으로 점수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 평균이 40점대라는 것도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40점이면 이미 번아웃 위험군인데, 이 수치가 평균이라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리하고 있다는 뜻이죠."
이 책은 번아웃과 관련된 한국사회의 특성을 탐구하는 데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다. 워커홀릭 사회인 한국에서는 "피로하다고 말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고객 응대를 주 업무로 삼는 서비스 직종 등 감정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무직 노동자도 회사에서 업무와 무관한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눈치도 능력인 사회여서 분위기 잘 봐가며 상사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 또 어린 시절부터 질릴 만큼 학원을 다니며 놀 시간도 없이 꼬박 공부만 하며 지내온 사람들은 '두뇌 번아웃'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노동시간은 긴데, 퇴근 후에도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또 써야 한다.
자연히 재충전의 시간이 줄어든다. OECD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은 OECD 평균에 못 미치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부상하며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그만큼 한국사회 구성원들 다수가 지쳐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과 일상의 밸런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으니까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하는 외침.
번아웃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책임 소재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번아웃에는 그러한 개인적 요소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지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번아웃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하기는 어렵다.
경쟁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평가당하고 비교당한다. 옆집 철수가 시험을 몇 점을 맞았는지, 난 왜 이런 점수밖에는 받을 수 없었는지. 옆집 미애가 어떤 기업에 취직했는지, 난 왜 그럴 수 없었는지. 지친다.
그런데 내가 지치고 힘든 것조차 내가 부족해서일까?
‘왜 나는 미련하게 내 멘탈도 관리를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하는 것도 없으면서 삶이 이렇게 버거울까.’ 이런 생각은 '나'의 소진을 가속화시킨다. 이런 과도한 피로감을 사회적으로 보지 않으면, 내가 힘든 게 오로지 내 책임이 되면 일이 꼬인다. 문제(번아웃)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미 소진된 사람들은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가 계속되면 자기비난과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그럼 더더욱 소진된다. 악순환이다.
많은 심리적 문제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모든 게 다 내 탓이고, 내가 못났고, 상황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내 인생은 최악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런 편향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나 신념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내 탓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막연하게만 보였던 문제가 조금은 명확해질지도 모른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 자체를 내 책임으로 돌리면 좌절감은 심화된다. 그런데 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온 게 나 때문만은 아니라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가 해낼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결국 균형이 중요하다. 책에서는 소진된 사람들의 회복을 돕는,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다양한 기법이나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호흡법, 자기관찰, 오감일기, 응급 처방전, 연결감 등.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기법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았으니 너무 지쳐 힘들다면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번아웃은 개개인의 삶의 질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소진을 겪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늘어날수록 사회는 더 강팍해진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에게 남아있는 에너지가 없으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친구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기 어렵고 누군가의 실수를 용인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관계는 점점 단절되고 일상에서 친밀한 사람들과 관계맺으며 재충전할 기회가 줄어든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들어지므로 일상적 수준의 공감과 치유가 점차 사라진다.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당신이 옳다》에서 이러한 현상을 두고 ‘공감의 외주화'라고 했다. 사람들이 서로 힘든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고, 공감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병원 치료나 상담에 맡긴다는 의미다. 정신과적 치료나 상담이 분명 필요한 사례가 있고, 그럴 때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 장벽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사소한 공감으로 충분히 회복 가능한 것들마저 일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가 곪아간다는 것이 골자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가 2022년부터 번아웃을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자는 직무소진 척도 제작자인 매슬랙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개한다.
"세계보건기구가 번아웃을 질병으로 분류한 것은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잘못되었다는 정의를 제공하려는 시도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번아웃 상태로 몰아넣는 회사, 더 넓게는 사회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에서 눈을 돌리면 소진되는 개인의 숫자만 늘어가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회적 공론장에서 논의되어야 할 이야기가 다시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되며 이 모든 해결을 병원에 외주 맡기는 형태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서로 단절되고 공감이 사라진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사회에서 소진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공감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고들 하지 않던가. 번아웃 상태는 에너지를 소진시켜 사람들에게서 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 에너지가 없으면 고립된다. 소진된 나를 채워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에너지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다시 재충전의 가능성을 엿본다. 이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선적으로 나 자신의 소진에 대해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것은 소진상태에서 회복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번아웃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게 별로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번아웃을 어떻게 진단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삶에는 힘든 일이 따르기 마련이고, 누구나 힘들 수 있고, 힘들어도 되며,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과 더불어 번아웃이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 상황, 개인의 부적응적 심리가 작동하는 기제에 대한 설명, 스트레스와 관련된 생물적 기제, 번아웃에서 회복할 수 있는 일상적 차원의 방법 등에 대해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현재 자신이 너무 힘든 상태라면, 혹은 번아웃에 관심이 생겼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네가 힘든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네 탓이 아니다.' '우린 함께 회복할 수 있다.'
지치고 소진된,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지치고 소진된 당신에게도 이 말이 닿았으면 좋겠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58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