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리뷰 | 듀나, 박혜진 외 7인, 《악인의 서사》
악인이 등장하는 창작물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는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선한 주인공이 악한 적대자를 무찌르는 권선징악 구조가 가장 흔하다. 특히 웹툰·웹소설 등의 서브컬처에서는 서로 비슷한 플롯의 권선징악 작품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이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악을 응징하고 선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한 번 죽었다가 자신이 죽기 전으로 회귀하여 운명을 바꾸어 나가는 ‘회귀물’에서, 주인공은 단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운명을 바꾸지만 그게 ‘정의로운 결말’로 나아가는 식이다. ‘넌 세상을 구했어!’라며 주변 인물이 주인공을 찬미할 때 주인공이 속으로 ‘나는 그렇게 대단한 의도로 벌인 일이 아니지만….’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사명감을 지니지 않은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행을 선한다는 이야기구조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현상은 흥미롭다.
한편 주인공이 악인인 경우도 있다. 웹툰과 웹소설에서는 ‘악녀였던 내가 환생 후 영웅이 됐다’는 식의 권선징악 구조가 다시 반복되곤 하는데, 이런 경우는 악인이 선인으로 갱생한 주인공 선인 서사에 더 가깝기에 제외하기로 한다. 주인공이 악인인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로 쉽게 예를 들 수 있다.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한니발> 시리즈, 디씨 코믹스의 유명 악당 ‘조커’를 조명한 영화 <조커>(2019) 등이 있다,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화된 <마스크걸>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선한 주인공에 대적하는 적대자로서의 악인이든, 악한 주인공이든 ‘악인’의 재현은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웹툰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주인공의 적대자이자 악녀로 재현된 ‘수아’가 어린 시절 심각한 가정폭력과 성차별, 외모차별 등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댓글에서 다수의 독자들이 보인 단호한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수아가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해도 걔가 한 짓을 이해할 수는 없다.’ <조커>가 개봉했을 때는 양분화된 평가가 서로 팽팽하게 부딪쳤다. <조커>가 세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와 분노가 섞인 비판의 내용은 ‘수아’를 향한 단호한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조커의 불우한 가정환경이 그가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런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명제를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악인의 서사>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명제에 대한 대중문화 및 문학평론가 9인의 글을 엮은 책이다. 편집자는 기획의도를 밝히며 이 책이 해당 명제를 다루는 숙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덕성에 대한 가치판단이 매우 복잡하고도 정교해진 오늘날, 특히 ‘악인’을 표현하는 방식에 관해 토론이 활발해진 현 시점에 이러한 작업은 꼭 필요하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국내 언론이 범죄자를 마치 ‘선한 인간’인 양 포장하는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내건 슬로건이었다. 2019~2020년 많은 언론이 ‘n번방 성착취 사건’의 주동자 조주빈의 과거라며 ‘조용하고 평범했다’ ‘학생 시절 봉사활동을 50여 차례 했다’ ‘대학 학점이 4.0 이상인 우등생이었다’고 표현한 일은 이 슬로건을 폭발적으로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 범죄 가담자 규모가 최소 6만 명 이상, 직접 피해자만 70여 명으로 추산된 대규모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과거에 우등생이었다는 정보는 어떤 목적으로 공개되었는가. 피해자의 삶보다 가해자의 삶에 이해와 관용을 베푸는 듯한 언론의 태도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실제 범죄자를 향했던 이 슬로건은 창작물에도 적용되곤 한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수아’와 <조커>를 향한 소비자의 싸늘한 태도는 그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 적은 사례는 현상의 극히 일부로, 창작물 속의 악인을 처단하고자 하는 독자의 요구는 점차 커지는 중이다.
피해자보다 범죄자에게 수용적인 사회는 피해자를 더 큰 고통에 빠뜨리고, 범죄자에겐 충분한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슬로건은 효과적이다. 그러나 슬로건이란 것은 명징하고 단순해 효과적이지만, 그렇기에 맥락을 반영하기 어렵다. ‘악인이 자라온 환경을 분석해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범죄 예방 대책을 강구하는 것’과 ‘악인이 자라온 환경을 드러냄으로써 그에게 이입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슬로건은 이 뉘앙스의 차이를 뭉개버리기도 한다.
‘악’이라는 것은 참으로 난해해서, 문장 한두 개로 정의하기 어렵다.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은 상극의 성질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층위는 아주 얇은 막이 켜켜이 쌓여 어떤 층은 합쳐진 것처럼 보여 층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한 명의 인간은 이러한 층위를 매 순간 넘나들며 때로는 가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은 서로 교차하며, 이를 가리기 위해서는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피해자성은 새로운 가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의 ‘수아’가 그렇다. 여성혐오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의 피해자였던 그녀는, 성인이 된 후에 사회의 여성혐오적 맥락을 이용하여 주인공 ‘미래’를 괴롭힌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소수자 혐오적인 사회가 어떤 비극을 빚어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수아’에 부여된 서사는 악인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를 조명한다.
비슷하게 <조커>가 사회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의견이 있다. 정신질환자와 빈자를 향한 사회의 핍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커>가 오히려 노골적으로 소수자를 혐오한다고 생각하지만(오직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당장 끄고 싶은 마음을 참고 끝까지 봤다.), 이 글은 <조커>에 대한 비평이 아니기에 이만 줄인다.
악은 정의부터 그것이 실현 혹은 재현되는 모습마저 너무나 복잡하다. 악의 얼굴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하나의 문장으로 ‘악’이라는 것을 재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비판에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각각의 비판이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로 환원된다면 그 의의가 금세 바래고 말 것이다.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악을 다루기에는 너무 커다란 명제다. 실제와 창작 양쪽 세계 모두에서 그렇다.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듀나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마라’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일반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일반론에서 멈추어서는 안 돼요.”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제에 대해 그가 내린 결론이 나의 의견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같은 생각이다. 슬로건을 내걸 수 있는 사례는 한정되어 있고, ‘악인’에 관련한 모든 사례를 이 슬로건으로 비판할 순 없다.
끝으로 책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 본다. <악인의 서사>에서 아홉 명의 저자는 ‘악’과 ‘악인’을 제각기 다르게 정의하고, 따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자영은 17세기 영국의 ‘마녀 서사’ 연극을 분석하며 악인의 서사에 대해 다루었으며, 최리외는 악인의 서사를 가해자인 어머니와 피해자인 딸 사이의 ‘모녀 서사’로 풀이했다. 책을 읽어보면 아마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더 많은 의견이 궁금해진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2023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