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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인연들 속에 내 곁에 남아있는 이들의 특징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by 악어 여경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나의 불완전함을 오롯이 감당해주는 이들만 남아있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그들이 그 불완전함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불완전함을 내보이기 싫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흘려보내진 까닭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진짜 소중한 사람들만 결국 내 옆에 남는다고 말한다. 살다 보니 가족밖에 없더라, 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말 가족끼리 피가 통해서라는 이유 때문일까.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니까 내가 감당하겠다, 는 마음이 먼저일 수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내겐 마음이 더 진해 보인다.




살다 보면 많은 타인이 내 옆을 스쳐간다. 마트에 쇼핑을 하러 갈 때 우연히 부딪치는 이도 있을 수 있고, 일을 하거나 어딘가에 잠시 소속되어 몸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함께 마주치게 되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써야 하는 다양한 가면은 거의 대부분 완전함을 향한다.

​누군가가 내게 완전함을 강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스스로가 완전함이라는 허울을 쓰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기왕이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나를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기왕이면 잘 하고 싶어 하고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한다.

​상대방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최대한 나를 숨기고 철저히 다른 가면을 쓰는 일. 이것이 사회생활을 잘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적이 아군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적이 되기도 하는 당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건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순진함을 돌아보아야 하리라.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결국, 언제나, 승리하는 쪽은 좋은 사람이다.

​주인공은 그리고 거의 대부분 좋은 사람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사람이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착하게 살면 상을 받아야 하고 대개는 이 사람들이 성공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착하게 살아도 실패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세상에 해를 끼치고 못되게 살아도 성공하기도 한다. 뉴스에 심심찮게 성공한 사람들이 이전의 악한 행동 때문에 이슈가 되는 건, 그들이 성공해서 유명하기 때문에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어떻게 벌을 받지 않고 저렇게 잘 살 수 있지, 의문이 드는 인물들도 많다.

​우리는 그들이 벌을 받기 바라고 고꾸라지길 원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딱딱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다른 이들은 절대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굉장히 공평해 보이지만 불공평할 때가 많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불공평하다는 점에서 실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것이다.

​하늘이 특별히 나에게만 좋은 운을 더해준다거나 내가 세상을 착하게 산다고 해서,

​나에게 유달리 남들보다 크나큰 선물을 줄 리는 없다.

어느 날 ‘너는 알고 보니 세상을 구할 슈퍼히어로란다’라며 위대한 사명을 줄 리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이런 현실을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저 주어진 우리 인생을 우리가 믿는 가치대로 묵묵히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렇게 불완전하다. 어디 세상뿐인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의 바닥은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안정되어 보인다.

​하지만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안정적이라 볼 수는 없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불안정하고 완전하지 않다.




완벽주의. 한자는 다르지만 나는 완벽에서 ‘벽’을 아주 주목해서 바라본다.

​완벽주의는 말 그대로 주변사람들로부터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벽을 치는 것이다.

​언제나 완벽하겠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그 누구에게도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사람들 속에서 소통하며 성장하는 존재인 인간이기에 그러면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기 어렵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 안에 살아가는 60억 인구 중 한 명인 내가 완벽할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에게 갇혀 있는 아주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리라.

우리의 불완전함을 받아 줄 이들이 있다니. 역설적으로 불완전하기에 사랑과 행복할을 느낄 수 있다니.

그러고 보면 인간은 기계에 비해 축복받은 셈 아닌가.

기계는 완벽하지 않으면 버려지기에. 그게 슬프게도,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축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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