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스물에도 서른에도 진로 고민)
회계사라는 업종 특성상 이직이 많기도 했고, '회사의 네임 밸류 = 이직하기 좋은 조건'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용산에 있는 회계법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업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세뇌당하며…….
입사 초부터 나는 동기들에게 끝까지 올라갈 가능성이나 남아있을 의사가 없음을 밝혀왔다.
입사 2년 차에는 이직하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었는데, 이직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어이없는 판타지를 꿈꾸던 부끄럽고 철없는 시절이었다.
지금 연봉의 반 아니 그 반의 반을 받고, 전공 따윈 안 살려도 되고, 신입사원으로 다시 입사해도 되니 스트레스 없는 일자리를 간절히 원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백오피스(back office, 지원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 고민 없이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할 것만 같은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직장생활에서의 웰빙'이 지상 최대 과제인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토록 원하던 주류 직종(main stream)이 아닌 지원업무(back office)를 담당하는 곳으로 이직을 했다. 물론 그 당시 금융권 회사들은 채용을 하지 않아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오게 되었다. 역시나 모든 일은 타이밍이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계산착오의 결과는 순차적으로 때때로 동시 다발적으로 나를 괴롭혔는데,
회사의 헤게모니(hegemony)를 이끄는 주류 직종이 아닌 '(소수) 직종으로서 일하는 고충'이라는 변수를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던 결과였다.
자고로 지원부서라면 같은 월급 받으며 꼬박꼬박 ‘9 to 6(nine to six)’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과중한 업무 책임 따윈 없을 것으로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부러워하기까지 했으니......
이게 다 자업자득인 걸까. 꼴좋다 정말.
세상에 책임 없는 일, 의미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정말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다니.
당시 나는 선두에 나서는 주류만이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착각은 오만하고 나약한 일개미의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게 하는 버팀목이었을지도.
'학업-취업-이직-결혼'. 지난 10여 년간 나의 20대는 큰 틀에서 내가 계획한 대로, 내 의지대로 비교적 잘 흘러왔다.
어느 날은 스무 살 무렵 적어놓은 메모를 보고 소름 돋은 적이 있는데, 10여 년 전 수첩에 적힌 꽤나 구체적 계획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살아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계획들이 30쯤에서 멈춰있다는 것.
스무 살의 나는 서른의 이후의 내 모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단지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개미에 불과했다. 그렇게 성실했던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갈 곳을 잃었다.
학생 일개미에서 직장인 일개미로 일터만 바뀌었을 뿐, 방향성을 상실한 나의 하루는 매일 표류하고 있다.
일하는 30대 기혼 여성으로서의 삶은 내·외부(가정과 직장) 변수가 꽤나 다양하고, 상당수는 내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에, 앞자리가 바뀐 지 꽤 지난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의 내 30대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과연 이 시점의 고민과 자책은 단순한 자괴감에 불과한 것일까.
이제부터 나는 이러한 고민과 후회, 불면의 흔적들을 유의미한 결과로 치환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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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의일상 + 여의섬라이프 + 현실적인로매스 + 대식녀의고해성사 + 만들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