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일 초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정혜영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초



상담실 기록


오늘 상담실 문을 연 것은 서른네 살 박준혁 씨였습니다.


그는 수척한 얼굴에 눈가가 푹 꺼져 있었고, 손목에는 전자발찌가 보였습니다.


"상담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준혁 씨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습니다. 판결문이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요."


"징역 사 년, 집행유예 오 년. 사회봉사 삼백 시간. 전자발찌 이 년."


준혁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작년 구월 이십삼 일이었습니다."


"회사 회식이 있었어요. 부장님 승진 축하 자리였습니다."


"술을 마셨어요. 소주 한 병 반 정도요."


준혁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대리운전을 불러야 했어요. 아니면 택시를 타든지요."


"하지만 운전했습니다."


"집이 십 분 거리였거든요. 새벽 두 시였고 차도 별로 없었어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준혁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일 초였습니다. 단 일 초요."


"핸드폰을 봤어요. 아내한테 온 카톡을요."


"그 일 초 사이에 사람을 쳤습니다."





준혁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쿵 소리가 났어요."


"처음에는 뭔지 몰랐어요. 범퍼를 뭔가 친 줄 알았어요."


"차를 세웠습니다. 내려서 봤어요."


준혁 씨는 손을 떨었습니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어요."


"할아버지였어요. 예순일곱 살이셨대요."


"피를 흘리고 계셨어요. 머리에서요."


"저는 얼어붙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준혁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일일구에 전화했어요. 떨리는 손으로요."


"'사람을 쳤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구급차가 왔어요. 경찰도 왔고요."


"음주 측정을 했습니다. 영점일삼이 나왔어요."


"면허 취소 수치였습니다."





준혁 씨는 서류를 펼쳤습니다. 사망 진단서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실려갔어요."


"뇌출혈이었습니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셨거든요."


"응급 수술을 받으셨어요."


준혁 씨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저도 병원에 있었어요. 경찰이 동행했지만요."


"중환자실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할아버지 가족들이 오셨어요.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준혁 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보셨어요."


"'우리 영감을 살려줘. 제발 살려줘'라고 울부짖으셨어요."


"저는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요."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우셨어요."


준혁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흘 후에 돌아가셨어요."


"뇌사 판정이 났거든요."


"제가 사람을 죽인 겁니다."


"음주운전으로요."





준혁 씨는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문자 메시지들이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조문하고 싶었어요.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준혁 씨는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할아버지 아들분이 저를 보셨어요."


"소리를 지르셨어요."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와. 우리 아버지 죽여놓고!'"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하지만 아들분은 계속 소리쳤어요."


준혁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술 먹고 운전한 게 실수냐. 그건 살인이야. 너는 살인자야.'"


"경찰이 저를 데리고 나갔어요."


"복도에서도 소리가 들렸어요."


"'내가 너를 죽여버릴 거야. 우리 아버지처럼.'"


준혁 씨는 손을 떨었습니다.


"그 후로 문자가 왔어요. 할아버지 가족들한테서 요."


"'살인자', '인간쓰레기', '지옥에 가라.'"


"하루에 수십 통씩 왔어요."


"전화도 왔습니다. 욕설과 협박이었어요."




준혁 씨는 통장 내역을 꺼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합의해야 형량이 줄어든다'고요."


"합의금을 준비했어요. 이억 원이요."


준혁 씨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부모님께 돈을 빌렸어요. 일억 원이요."


"은행 대출도 받았습니다. 오천만 원요."


"친척들한테도 빌렸어요. 나머지 오천만 원을요."


"변호사 비용이 천만 원 들었어요."


"공탁금으로 일억 구천만 원을 법원에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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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멈추지 않고 무너진 문장을 다시쓰는 네오 크리에이터(Neo-Creator) 리라이프작가(Re-Life)정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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