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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Feb 05. 2017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서운해도 계속 보고 싶은 사람

  그 날 따라 왠지 모를 서운함과 피곤함이 쌓여 예민한 상태까지 이르렀을 때, 우리는 종종 진심이 아닌 말을 하여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연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친구, 심지어 가족과도 말 한마디로 인해 관계가 쉽게 틀어질 수도 있다. 서로 감정의 골은 깊어진 채 누구 한 명 먼저 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그 상태로 일시정지가 되어버린다. 연인의 경우에는 그렇게 이별이 찾아오는 것이고, 친구라면 대화 나눌 상대가 한 명 줄어드는 것, 가족이라면 왠지 모를 씁쓸함과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그 상황의 나는 왜 조금 더 친절하지 못했을까?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에도 있지만, 그것은 굉장히 오래 걸릴뿐더러 수동적인 방치에 불과하다. 

상대와 굳이 유지하고 싶은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르겠지만, 좋은 사람과 오랜 시간 쌓았던 교감을 한 순간에 잃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서툰 무너짐은 모두 '미운 말'로 인해 비롯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상황에서의 만큼 나와 상대가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 그뿐이다. 

우리가 나쁘고 이상해 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말을 예쁘게 하는 방식을 몰랐기 때문이다. 


여울아 밖에 빗소리 참 좋다, 그렇지?


  그녀는 학교에서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언니였다. 나보다 한 기수 선배였으며 첫인사를 한 뒤로 신기할 만큼 빠르게 친해졌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많은 대화를 했다. 누구보다 진실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이가 되었으며 여행지에서는 서로 살아왔던 나날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을 만큼 돈독한 우정이 분명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학교 과제로 단편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었다. 언니도 나의 촬영을 도와주러 온 스태프들 중에 한 명이였다. 밤을 새워 촬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해 예민한 상태였을 것이다.

내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 은 알지만, 그날따라 언니와 합이 맞지 않아 의견이 많이 충돌하였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진행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그녀의 의문들이 나의 신경을 건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건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니 꾹꾹 눌러 참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그 순간만큼은 촬영을 잘 끝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서운함 감정은 촬영이 끝나고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몇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촬영 장소에서 첫 차가 오기까지 대기를 하기로 했다. 불 꺼진 방에서 각자 편한 대로 잠을 청했는데, 평소 같으면 언니를 따라 같은 방으로 갔을 테지만 그 날은 왠지 혼자 있고 싶었다. 


한쪽 구석에 담요를 깔아 누웠다. 밖에는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빗소리가 들렸다. 

이유 없이 울적함이 더해졌다. 


내가 놓친 것들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점이 부족했나, 스스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고요한 적막을 깨는 핸드폰 진동소리가 울렸다. 시간은 새벽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문자였다. 


나에게 빗소리가 참 좋다는 말을 시작으로 고마웠던 것, 미안했던 것들에 대한 글들을 장문의 메시지로 보내온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한마디로 모든 서운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우리는 같은 공간, 다른 방에 있었다. 벽을 사이로 두고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얼마나 저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까. 그녀도 나와 같은 미안함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곧이어 이런 일로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언니의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한동안 멍하니 답장을 이어가지 못했다. 


먼저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나도 언니를 많이 배려 못해 미안하다 했다. 만약 그녀의 그런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분명 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많아 언제건 붙잡고 그 날일에 대해 대화를 하여 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한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헤아려주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왜 그런 말을 먼저 건넬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빗소리가 좋냐는 그 말, 그 예쁜 첫마디가 다음 문장을 읽지 않고도 내 마음을 녹였다. 

모든 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사소한 오해로 같이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말을 예쁘게 할 줄 아는 사람의 주변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오래 유지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사람 곁에서 쉽게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기에 오해만 쌓인다. 좋은 사람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리고 그런 고마움과 미안함을 말로 예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군가를 깊게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낮추고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생각해주는 것, 겸손함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태도가 분명 존재해야 한다. 


그 태도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쁜 말의 습관, 너와 계속 연결되고 싶다는 것.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최영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instagram.com/yeomi_writer


[말을 예쁘게하는 사람]이 담겨있는 '울면서 걷다'

"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고난에 울더라도 뒤로 가지는 말자고,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시에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

https://brunch.co.kr/publish/book/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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