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

남겨진 것들, 그러나 잡히지 않은

by 여미


순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비누 인형은 그렇게 비눗 방울이 되어 멀리멀리 날아갔어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비누 인형'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나의 기억 속의 '비누 인형'이라는 작품은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남아 커다란 비누를 깎아 비누 인형을 만든다. 비누 인형은 가난한 소년의 유일한 친구였다.



소년의 유일한 친구, 비누인형

긴 장마가 시작되었고 학교에 다녀온 사이, 비누 인형은 온 데 간데없고 비눗 방울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비누 인형이 사라진 것을 본 소년의 마음은 어땠을 까?

내가 어른이 된다면, 저 비누 인형을 쓴 소설가를 꼭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 작품은 그때 당시 내 나이 또래가 쓴 학생 작품이어서 작가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았다. 교과서 말미에 '쉬어 가기'라는 카테고리에 실린 짧은 소설이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날만큼 무척 인상이 깊었다. 지금쯤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거라고 홀로 상상하곤 한다. 나의 감수성을 가장 자극했던 작품, 비누 인형이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비누 인형은 비눗 방울이 되어 날아가버렸다.

나는 가끔 저 소설을 처음 봤을 때의 순간이 그립다. 처음으로 '글'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고, 슬픔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훗날 대학에 와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을 때도 아이가 그리는 시선이나 세계에 관심이 가졌던 것도 어린 날의 마음을 울렸던 비누 인형의 소설 덕택이었으리라고, 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큰 영향을 주었던 소설이라고 생각해본다.


무언가를 처음 느꼈던 그 달콤한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것은 언젠가 문득, 그리움으로 찾아온다.



추억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커다란 영화관이 있다. 그 영화관에는 추억이라는 다양한 필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곳은 언제나 '나'라는 자아가 관객으로 앉아있다. 모든 곳이 셀프인 그곳은 관객인 내가 직접 꺼내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튼다. 그리곤, 언제든지 멈출 수도 있으며 언제든지 다시 틀 수도 있다.


그렇게 추억은 언제나 나의 머릿속에서 상영이 된다. 돈을 지불하지도, 번거로운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나 떠올릴 수 있는 것들, 그러나 모두 지나가버린 것들.


'그래. 그것 또한 추억이지'

좋지 않은 기억일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 한 문장으로 새롭게 재해석되는 것. '추억'


지나가버린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

결국엔 기억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것들.


가끔 꿈에 나타나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며 괴롭히기도 하는 것들. 그것은 '추억'이다.


사람

'순간'과 '추억'에 가장 연관되어 있는 것, 그것은 사람이다.

언제쯤이면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게 될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추억만 남긴 채 사람은 떠나간다. 향기도, 감촉도 다시는 느낄 수 없다.


오로지 커다란 스크린 앞에 앉아 추억이란 영화를 보는 '나'라는 관객만 홀로 남을 뿐.


그렇게 남겨진 것들은 있지만,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모두 현재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추억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순간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들.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란 마치 넓은 바닷속 같아서, 그 깊이도 크기도 알지 못한 채 한없이 뻗어나간다. 우리는 그리움이라는 바다 위에 집을 짓고,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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