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리뷰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나의 사랑, 그리스'는 작년에 열렸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경쟁작으로 초청되어 이미 많은 시네필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세 편의 옴니버스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연 배우가 바로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본인이라는 것. 이렇게 옴니버스 영화에서 한 에피소드를 담당하는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배우와 연출을 함께 겸비하면서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감독 중에 캐나다의 '자비에 돌란' 감독이 있다. 연기를 전공하는 사람이 영화의 연출을 했을 때의 뿜어 나오는 시너지는 대단하다. 그가 연출한 영화의 배우들의 연기는 평범하지가 않다. 캐릭터 안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것은 하나의 독창성을 창조해낸다. 어떻게 그런 연기를 끌어냈을 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 디렉팅에 있어서 섬세함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양익준 감독 또한 자신이 출연한 영화 '똥파리'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가 연출을 하는 영화들 중에 아쉬운 작품들도 물론 있다. 영화는 감독의 시선이 분명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작가적인 시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는 한 가지 무거운 흐름이 존재한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바탕으로 세 가지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공통적으로 모두 그리스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영화 속 인물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영화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써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 때문에 인물이 겪고 있는 갈등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리스는 꽤 오래전부터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로 인한 파시스트들과 인종 차별주의 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벌여지면서 난민에 관한 문제들도 수면에 오르게 된다.
바로 첫 번째 에피소트 '부메랑'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리아 난민으로 그리스에서 떠돌아다니는 파리스와 여대생 다프네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질러진 시국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 다프네는 순수한 청년 파리스에게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그에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무한한 자유 속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사랑을 나눈다. '낭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피 터지는 전쟁 속에서도 오로지 사랑의 속삭임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는 듯한 무한한 환상의 세계. 지구 상에 단 둘만 남겨졌을 지라도 두려움 조차 느낄 수 없는 강인한 사랑의 힘. 이 에피소드를 그런 것들을 아름답고 낭만적이게 그려낸다. 특히 버려진 비행기 안에서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보는 내내 마치 사랑에 빠져있는 듯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에피소드 말미에 파시스트들의 시위 때문에 총기가 발생하였을 때도, 버려진 비행기 안에서 그들은 두려움을 함께 나누게 된다. 버려진 비행기는 그들 만의 소통의 공간이자,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서 동시에 난민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버려진 비행기처럼 파리스는 그리스에서도 갈 곳 없는 방랑자가 되어 버린다. 인종을 넘어선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는 그리스의 심각한 경제난, 그로 인한 시위들, 난민의 문제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로세프트 50mg'이다.
감독이 직접 주연을 연기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지오르고와 엘리제의 하룻밤 사랑 이야기이다. 그리스에 출장을 온 엘리제는 우연히 술집에서 지오르고를 만나게 되고, 담배 하나로 묘한 신경전을 펼치다가 어떤 것으로부터(?) 욕망을 느끼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지오르고는 꾸준히 '로세프트'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 약은 우울증 치료제이다. 그가 약을 먹는 이유는 끝없는 경제 불안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이다. 나라가 전체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끊임없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집단 '우울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지오르고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계속해서 동료 직원들이 해고를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지오르고도 해고 대상으로 오르게 되지만,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엘리제가 그것을 지시하는 대상이 된다. 엘리제도 자신이 아는 사람을 해고시켜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지오르고가 꾸준히 복용하던 '로세프트'를 복용하게 되면서 사회의 악순환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점은 왜 굳이 '불륜'의 소재를 넣어 엘리제와 지오르고의 관계를 표현했을 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설정되었던 젊은 청춘들의 순수한 사랑과 대비를 시키고자 했다면 이러한 설정들이 적절하긴 했지만 다소 냉정하고 단호하게만 비치던 엘리제가 겪는 고민들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지오르고를 유부남으로 설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가정이 있어서 좋았던 점은 아들과 게임을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들이다. 그 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시선에서 그리스가 겪는 불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 안타까움이 더 드러났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에피소드 '세컨드 찬스'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마치 단편 영화로 연출했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뛰어난 각본 구성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만일 이 시나리오가 누군가의 서랍 속에서 커다란 자물쇠로 인해 갇혀 있다면, 그에 맞는 열쇠를 직접 굽고 제작하여 뚜껑을 열어서라도 쟁취하고 싶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남자 배우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배우이다. 한국에서도 굉장한 흥행을 거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의 주연 배우이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고집 불통 천재 교수 연기를 뛰어나게 소화하여 한국 관객들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안겨준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 에피소드에서 달콤한 로맨스를 연기하고 있다는 점, 매우 흥미롭지 않은가?
단편 영화로서의 손색이 없다는 것은 한 가지의 콘셉트를 가지고 이야기 흐름을 잘 이끌어냈다는 뜻이다. 그들은 슈퍼에서 만나 슈퍼에서 사랑을 나누게 된다. 평범한 주부 마리아는 백치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녀의 또 다른 매력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세바스찬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그녀에게서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녀 안에 살아 있던 배움의 갈망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들이 나눈 서툰 대화들이 곧 목표가 되고, 그 목표는 결국 이루어지게 된다.
아무도 없는 슈퍼 안에서 그들만의 판타지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갈등을 마치 해소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은 연령을 초월한다. 부족한 단어들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려 경청하고 노력하는 모습.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주제 의식이 아녔을까?
세 편의 에피소드는 하나를 향해 가고 있다. 많은 과정 중에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지시하고 있다. 그리스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는 단순히 그 나라의 부채를 다루고 있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간적인 권리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주요 관람 포인트이다.
그리스 동시대를 보여주면서 사랑과 낭만을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
나의 사랑, 그리스였다.
글 여미
yeoulhan@nate.com
브런치 무비패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