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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
By 여미 . May 12. 2017

코끼리와 개미

가족에 대하여

아무리 잘해보려고 해도 너그러워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기와 질투를 느꼈고, 내 욕심을 가장 빠르고 쉽게 드러냈고, 분노를 포효하듯이 표출하였고, 조금이라도 손해라 느끼면 참을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엄격해지고 유치해지는 단 한 사람.


언니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항상 나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였다. 

초등학생이었던 언니는 그런 나를 가끔은 귀찮아하고 성가셔했다. 매일 같이 유치원 앞에서 나를 기다려야 했고, 집으로 데려다줘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언니의 모습은 매우 얄밉게 느껴져서 그런지, 그녀를 난처하게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복수였다. 한 번은 유치원이 끝나고 언니와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얼음이 동동 떠있는 차가운 물이 먹고 싶다며 그 자리에 멈춰서 고집을 부렸던 기억이 있다. 당황한 언니는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지만, 나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얼음이 3개 이상 담겨 있어야 하는데 이 컵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생떼를 부렸다. 그렇게 언니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선생님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식으로 언니가 곤란해하는 것을 즐겨하곤 했다. 어떤 심리였을 지는 모르겠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갈구하지도 않았는데, 뜻하지 않게 방해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온당하지 않은 심술을 부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나보다 잘하는 것이 많았다. 그림도 잘 그려서 상도 많이 받았고 손재주가 좋아 만들고 꾸미는 것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늘 부러워하고 질투를 느꼈다. 밖에서는 양보와 배려를 원칙으로 행동했지만, 유독 집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먹을 것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내가 아끼는 물건을 빌려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낮이나 밤이나 가족이라는 존재는 내 옆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무의식적으로 들어와 앉았던 것일까. 그녀 앞에만 서면 나의 욕심은 배로 늘어났고 심술을 그대로 드러내기 일수였다. 집 안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다투고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언니가 가는 길은, 나도

편한 사람일수록 매우 엄격해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일수록 너그러워져야 하는 것인데 오랜 정을 나눈 사람은 나를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있다. 말을 함부로 하게 되고, 그 안에서 예의와 존경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침해받지 않기를 원한다. 좋은 대우를 받을수록 타인에게 베풀려는 마음이 생기고, 호의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런 대우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먼저 부탁하기보다, 그들을 찍어주겠다고 말을 걸면 대부분 돌아오는 말은 “감사합니다. 저희도 찍어드릴까요?”라고 말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런 방면에서 단 한 번도 되갚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도움을 베풀면, 그 도움은 반드시 돌아온다.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먼저 주면 된다. 


분명 이런 습관은 어딜 가나 좋은 대우를 받는 과정이 된다. 하지만 유독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언니에게는 그런 것이 잘 되지 않았다. 옷가지들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로, 심지어 먹는 걸로도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그녀로부터 쟁취하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언니의 편을 많이 들어 주시곤 했다. 아무래도 큰 딸이기도 하고, 나보다는 차분한 성격의 언니의 말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억울한 판결을 받고 시무룩해진 나에게 다가와 언니는 한마디 하곤 했다. 


봤지? 난 코끼리고, 넌 개미야.
개미는 코끼리 등에 절대 올라갈 수 없어. 


어찌 되었든 난 언니를 이길 수 없었다. 집 안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렇게 언니를 향한 아량은 점점 줄어들었고 엄격 해져만 갔다. 

나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 없었다.


언니는 정말 나를 귀찮고 부끄럽게 느끼는 것일까? 


초등학생 때 하도 울어서 눈이 벌게진 채로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언니가 무슨 일이냐며 자초지종을 물었을 때 서러움에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같은 반에 한 남자아이가 심하게 장난을 쳤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의 형이 언니가 아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바로 그 친구의 형에게 전화를 걸어서 너의 동생이 나의 동생을 괴롭혔으니 그를 부추겨서 사과하라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처음으로 언니는 나를 위해서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 이후에 내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언니는 두 팔을 걷고 찾아가서 해결을 해주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친구들은 교복을 입은 언니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에 처음으로 언니가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언니가 하는 것을 그림자처럼 따라 하곤 했다. 언니가 갖고 있는 것은 나도 갖고 싶었고, 언니가 하는 것들은 모두 재미있고 가치 있는 거라고 여겼다. 나보다 3년 정도 더 살았을 뿐인데, 언니가 하는 것들이 늘 새롭게만 느껴졌다. 새로운 정보를 언니로부터 전달받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랑 거리가 되곤 했다. 언니와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붙은 야광 별을 보며 이런저런 고민들과 함께 이야기보따리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바쁜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는 그녀의 존재 만으로 든든했다. 


어느덧 우리는 성인이 되어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예전만큼 언니와의 싸울 일도 줄었다. 그만큼 우리가 마주할 기회도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녀는 표현하지는 않지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나를 괴롭히고 방해하는 것들이 생기면, 그녀는 와줄 것이다. 


몇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와 이모들이 서로 안고 우는 모습을 통해 한 동안 많은 생각에 잠겼다. 아직은 인정하기도 싶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지만, 아주 먼 미래 이야기지만, 과학이 아주 많이 발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대가 좋아지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한 줌의 모래가, 햇빛이, 바람이, 별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도 언젠가는 나의 곁을 영원히 떠난다. 


세월이 흘러서 나에게도 그런 순간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면, 


나에게 남은 사람은 누구일까.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끔은 언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낸 언니와의 추억은 아직 까지도 선명하다. 언니라는 존재는 마치 미로와 같았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도 그녀가 나를 보며 앉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언니와의 성격이 잘 맞는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가끔도 내 물건을 허락 없이 쓰거나 방문을 벌컥벌컥 여는 바람에 나의 단잠을 깨우곤 한다. 너그러워 지려다 가다도, 고슴 도치 마냥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로부터 빼앗은 식량이 달콤했던 이유. 

그녀가 가진 것들이 좋아보였던 것 만큼 내가 언니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녔을까?


코끼리와 개미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김예원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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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별이 빛나는 밤에
나의 반짝이는 글과 그림이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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