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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Feb 23. 2022

하지 마라 증후군

이 세상에는 하라는 말보다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다.


2년 전에는 도서관 사서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자료들을 엄청나게 찾아보고 있었다. 사서 카페, 사서 자격증 등, 언젠가는 직무를 옮길 생각으로(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회사만 바라보고 살기에는 갑자기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 대학원에 평생 교육원까지 싹싹 긁어서 알아보는 중에, 실제 사서가 쓴 에세이 책이 있다고 하여 바로 구매를 하였다.


책이란, 내 몸의 일부분이니 어차피 당연히 나에게 너무나 가까운 존재이고, 도서관에서 책들과 함께 숨 쉬면서 일한다면 내게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이게 왜 된다고 생각했지?) 아주 1차원 적인 상상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갔을 때, 앉아서 책도 대여해주고 대여 카드도 만들어주고, 가끔씩 내가 찾는 책도 찾아주는 그런, 평화로운 직업이 아니던가.


사서가 될 자격만 갖춘다면, 언제든지 회사를 때려치울 생각으로 차곡차곡 서치를 하던 중에 사서가 쓴 에세이를 접하고 말았다. 아니, 봐서는 안되었다. 내가 꿈꾸던 세계가 와장창창 깨져버렸으므로.


책에는 '여러분, 사서의 세계로 오십시오. 어서 사서가 되십시오!'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대체로 '사서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개고생을 하는 직업이고,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은 하늘의 별따기고, 앉아서 책을 읽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 아, 맞다. 9급 공무원이면 모를까. 그런데 9급 공무원이 되려면....(중략)' 이라는 말을 약 200페이지의 글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아주 재밌게 읽기는 했지만(그래도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세계에 대한 현실을 보고 있기에 흥미진진했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나 했는데, 누군가가 제발 하지 말라고 싹싹 빌고 있으니 등을 돌릴 수밖에.

이렇게 또 현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져 고이 접었다.


그리고 조금 더 들여다보니 여기저기서 사서는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 인터넷에 돌고 돌았다. 계약직만 전전하다 결국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글들. 그렇게 마음은 굳어갔다. 원래의 자리에 계속 있어야겠다고.

 

그다음에 꽂힌 제2의 직업은 한국어 자격증 취득 후 한국어 강사 되기. 공부라고는 질색이지만, 국어 공부는 좋아한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낱말의 뜻풀이와 익숙히 하는 단어들까지 여러 뜻을 찾아보며 확실하게 이해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투자해서 한국어 자격증 공부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에 한국어 자격증 종류, 관련 교육 기관 등등 비용과 시기를 알아보던 중에 또다시 직면했다.

일명 '하지 마라 증후군' (내가 방금 지었다)



이미 하고 있거나, 그 길을 걸었다가 다시 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마다 한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자격증 있어봤자 한국어 강사로 먹고 살기에는 하늘의 별따기다. 제2 외국어 있지 않는 이상 경쟁력 없다. 최저 임금이다'


뭐, 그건 그렇고 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최저 임금인 걸까, 라는 의문에 빠졌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끌리는 병이라고 걸렸나?) 게다가 조금만 관심 생겨서 해보려고 하면 최저 임금에다가, 모두가 하지 마라 증후군에 걸려버리고 그것은 마치 바이러스 마냥 퍼지고 있다.


그렇게 두 번째로 관심이 생겼던 직업에 '하지 마라 증후군'이 재발되어 사기가 또 떨어졌다. 이 정도면 전망이 어두운 계열에만 꽂히는 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돈도 안되고, 알아주지도 않아서 이제는 거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일'에 나는 토끼눈처럼 반짝 거리며 뛰어들 생각을 한다.


그리고, 최근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가 또다시 하지 마라 증후군에 걸려버렸다.

이번에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겨울에 붕어빵도 사 먹어야 하고 여름에는 메밀국수도 사 먹어야 하니 회사를 다니긴 하지만 언젠가는(그놈의 언젠가는) 책도 내고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베스트 샐러 작가가 되어 있고, 간간히 영화 관련 채널에 패널로 소개되는, 심야 라디오에도 간간히 등장하여 여러 사람 상담도 해주고, 한마디로 유명해져서 가만히 있어도 재능을 마구마구 사용하고, 그러고도 돈이 들어오는, 그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굴비 한 마리 구워 먹고, 보라카이 가서 망고 셰이크도 먹고, 그런 막연하고도 말도 안 되는, 그렇지만 언젠가는(그놈의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고 믿고 있는, 그 '작가'라는 것.


또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을 직접적으로 쓴 것은 아니지만, 나한테는 하지 말라고 들렸다. → (하지 마라 증후군에 하도 시달려서 내가 예민해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 1년 내내 베스트 샐러 코너에 걸리지 않는 자들이라면(그래, 바로 나!) 어떻게 하면 먹고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 방법이라는 게 조금 서글프고, 결국 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는, 그런 현실을 담은 글이긴 하지만은)


10년 이상 전업 작가로 살고 있고, 한 아이의 엄마로, 아주 당당하고 멋지게 살고 있는 작가님은, 결국 또 나에게 하지 마라 증후군을 안겨주셨다. 이 세상엔 정말 하지 말라는 게 많구나.


하라는 일보다, 하지 말라는 일이 많다는 것. 왜 그럴까?


반대로 말하면 누가 내게 '영상 편집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나 또한 그걸 직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은 거다.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이렇게 댈 것 같다.


'아니, 더 멋진 직업도 많은데 왜 굳이 이걸 선택하는가, 자네!(내가 지금 재미없음). 돈도 적게 주고(내가 지금 적게 받음), 바쁜 곳은 너무 바빠 오래 일하기도 힘들고(내가 지금 오래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함), 다른 길을 찾아보게나(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다른 길을 찾았을 것 같음)'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늘 갈망한다고.


Q. 대학을 가야 하나요? 대학을 가지 말아야 하나요?

대학을 간 사람 → 배우는 거 없고, 돈 아까우니까 가지 말게나

대학을 안 간 사람 →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을까?


경험을 이미 해본 사람은 경험을 해놓고 하지 말라고 하고,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필사적으로 그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사로잡혀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이제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궁금한 사람과 궁금증이 풀린 사람의 차이인 걸까. 궁금한 사람은 너무 궁금하고 미칠 것 같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니 가슴이 쿵덕쿵덕 말랑말랑해지고, 궁금증이 풀린 사람은 이미 알 것 다 알고 속속히 파헤쳐봤기 때문에 냉소적인 것인지. 결국에는 그 세계 안에 들어와서 어찌어찌 울며불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면서 말이다.


하면 뭐. 하는 거지. 뭘 자꾸 하지 말래.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하지 마라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하라는 말을 하기에는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이 대체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어렵게만 느껴지니까. 나보다는 내가 모르는 세계 속에서 더 행복하고 더 즐겁고 더 쉽고 더 편한 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응원에서 우리는 모두 하지 마라 증후군에 걸려버린다. 결국엔 너와 내가 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지 말라는 것이겠지.


이렇게 세 번의 뼈아픈 현실을 맞이했다. 사실 도서관 쟁이와 가나다라마바사 선생님은 관심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바로 등을 돌렸지만, 마지막은 글쎄. 그래도, 바로 버리진 않으련다. 그 속에서 작가님처럼 어찌어찌 살아가고 토끼 같은 자식도 먹여 살리고 다 하는데 뭐요!


하면 뭐, 하는 거지! 이제는 하지 마라 증후군에 저항하는 '하면 뭐, 하는 거지. 뭘 자꾸 하지 말래' 알약을 스스로 처방할 지어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결국 더 궁금한 사람이 지는법..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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