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좋아하시나요?
여행
"여행 좋아하시나요?"
여행을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나는 사실 그렇지 않다.
파워 I 성향에, 기본적으로 밖에 돌아다닐만한 체력이 별로 없다. (조금만 걸어도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쉬고 싶다)
파워 귀차니즘 성향에, 맛집, 관광 코스 등 알아보는 것도 고르기 번거롭고 힘들다. (=귀찮다)
파워 선택장애 성향에,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 고르기는 더더욱 힘들다. (=귀찮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숨 쉬는 걸 해야 하나 보다)
돌아다니는 것도, 무언갈 탐색하고자 하는 의지박약 프로 노잼러 여행자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어떻게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방방곡곡 열심히 돌아다녔다.
나도 모른다.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꼭 떠나야 된다는 나름의 룰이 내 머릿속에 존재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여행이란, 건강한 체력과 시간과 돈이 삼단콤보로 갖춰져야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가 아니면 누릴 수 없다는 불안감에,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모아둔 돈을 끌어 모으고 모아 무말랭이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어디든 간다. 몸이 아파서, 시간이 부족해서, 먹고살기 빠듯해서, 언젠가는 간절히 원해도 여행을 갈 수 없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숙소를 찾거나 맛집을 검색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귀찮은 일이지만,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날부터는 부지런히 찾아보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알아놔도 당일만 되면 "어디 가기로 했더라" 하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여행 좋아하세요?
펭귄을 만난 지 어느덧 2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여행을 그리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다. (펭귄도 위에 열거한 나의 노잼러 여행 성향과 거의 99% 일치한다)
기껏해야 강릉 1박 여행을 두 번 정도 갔고, 우리는 대부분 서울에서 데이트하거나 동네 카페에 가서 책을 보거나 아이패드, 핸드폰으로 노는 걸 너무 좋아한다. 그나마 갔었던 1박 여행도 전부 내가 끌고 간 것이기 때문에, 아마 펭귄은 나보다도 여행을 더 선호하지는 않은 듯하다. (저번에 물어보니 가면 가는 거고 안 가면 안 가는거라는데 이것이 무슨 대답인 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 우리가 처음으로 2박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펭귄은 이번에도 강릉 1박 여행을 제안했지만, 나는 또다시 "이번이 아니면 안 돼!" 병에 걸리고 말아서, 둘 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수에 가보자고 했다. 그것도 2박으로.
(수없이 들었던 "여수 밤바다"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한 채로 33년을 살았다)
나도 모른다(맨날 모른다) 내가 왜 2박을 가자고 했는지! (지금은 살짝 후회한다)
우리가 그동안 갔었던 강릉 1박 여행은 바닷소리만 들어도 힐링이 되었고, 너무나 좋은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1박으로는 아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펭귄이랑 처음으로 더 길게 휴가를 즐기다가 오고 싶었다.
우리는 주말에 함께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느라 짐을 거의 싸지 못한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여행 당일에는 아침에 일어나 부랴 부랴 기차역으로 갔는데, 시간도 없어서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했다. 분명 여유를 가지러 가는 여행인데, 준비가 안된 채로 기차역 앞에서 대충 김밥과 과자를 사들고,
출발하기 10초 전 기차에 겨우 탑승했다. (지금도 어떻게 탈 수 있었는 지 모른다)
둘 다 기차를 못 탈 뻔했지만 어쨌든 탔다는 행운에 잠깐 좋아했지만, 김밥은 (정말) 맛이 없었고, 나는 어제부터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여행인 만큼,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재밌게 놀다 오고 싶어서 좋지 않은 컨디션을 애써 무시하며 기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분히 기다렸다.
(이때부터 나의 잘못된 판단은 시작되었다)
휴가 시즌이 지난 비수기에 여행을 와서 그런지, 9월의 여수는 무척 차분하고 조용했다. 예약해 둔 숙소는 너무 멋지고 좋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여수의 바다는 강릉의 바다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바다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았고, 시원한 바람도 덜 불었다. 펭귄과 찾아두었던 맛집들과 카페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맛은 그럭 저럭 먹을만한 정도였다.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일까)
숙소 주변에는 식당이나 번화가 쪽이 아니라서, 매번 먹자골목 광장까지 가야 했는데 둘 다 돌아다니는 것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아서, 금방 지치고 힘이 들었다. 바다가 넓어서 예쁘긴 했는데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잔잔한 넓은 호수 같았다. 어디든 가도 바다냄새가 풀풀 났었던 강릉이 그리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왕 여행을 왔으니, 고급진 회도 먹고 유명한 간식들도 먹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속이 정말 불편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한번 무시했던 나의 몸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부랴 부랴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사 먹었지만, 여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행 직전에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던 과거의 나를 질책(?)하며 2박 3일을 보냈다. 여수는 우리에게 생각보다 심심한 곳이었다. 분명 야경도 멋지고, 하늘도 예뻤지만, 돌멩이에 기어 다니는 조개껍질 같은 감성은 없어서 아쉬웠다.
나에게 맞는 여행
그동안 펭귄과의 강릉 1박 여행이 편안하게 느껴졌었던 이유는, 우리와 맞는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여수 여행으로 인해 깨달았다. 우리는 너무 먼 곳을 선호하지 않고, 길게 어딘가에 머물면 피로도가 쌓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도 몸도 마음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히 예약한 숙소에 많은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펭귄과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며 보내고, 숙소 근처에서 산책도 하고, 사진도 아주 많이 찍고 놀았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번 여행은 우리와 맞지 않은 여행이었다고.
결국 서울행 기차에서 내 위장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고, 집에 와서는 위염약을 먹고 바로 뻗어버렸다.
개인적인 깨달음도 몇 가지 있다.
나같이 무말랭이 인간은 여행 직전에도 몸관리를 잘해야겠다는 깊은 깨달음과, 개인 상비약을 꼭 챙겨야겠다는, 소중한 경험을 안고 돌아왔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아무리 예쁜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몸통 속을 휘젓고 다니는 자극에만 집중하게 되어서 너무 아쉬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먹으러 다닌 나 자신 혼나야한다) 여행을 기다리는 시기에는 운동도 꾸준히, 밥도 조심히, 그리고 약도 챙겨야 한다!
여러모로 완벽히 힐링할 수 있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또 하나의 값진 배움을 얻고 돌아왔다.
나에게 맞는 여행이 가장 완벽한 여행이 아닐까.
여행, 좋아하시나요?
글/사진 여미
yeoulh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