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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Dec 09. 2024

꿈속에서

어릴 적 내가 자주 꿨던 꿈은 쫓기고, 빼앗기고, 총살당하고, 칼에 찔리고, 도망치는 꿈들이었다. 나는 좁은 구석 틈을 찾아다니며 숨을 곳을 찾아서, 어딘가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다. 꿈에서 깨어나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굳은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다. 20대 초반까지, 이런 꿈들을 정말 자주 꿨다. 그리고, 현재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신혼집으로 이사 오면서 요즘 내가 자주 꾸는 새로운 꿈이 있다.


꿈속에서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나라는 인간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정말 정말 신기하게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20대 시절에 다양한 이유들로 멀어졌거나, 몇 년 동안 안부를 묻지도 않게 되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결혼 소식을 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왜 이제 와서 연락을 하지? 축의금을 받으려고 하는 건가, 하객수를 채우려고 하는 건가?"라는 경계심과 왠지 모를 불편함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나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세계를 종료하고, 나에게 행복을 주는 배우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인데, 당연히 지난 인연들이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 자, 이제 새로운 곳으로 향해 가는데 마지막으로 할 말 없으십니까?

- 누군가가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전에 내게 이런 질문을 속삭인다. 

- 아, 잠시만요! 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친구들한테 인사하고 와도 될까요? 진짜 보고 싶어서요.....


물론 결혼 후에도 연락할 수도 있고, 나중에 다른 계기로 만날 수도 있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사람이 굉장히 감성적으로 변하게 되어 차분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나 같은 경우, 매일매일 옛 친구들이 생각나 마음이 울적해서 집에서 한동안 소주를 깠다. (남편은 이 사실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혼자 이상한 청승을 떨었던 것 같지만, 그냥 감성에 파묻혀버린 인간이었더랬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친했던 인연들과 멀어진다. 환경이 달라지면서 접점이 줄어들고, 더 이상 서로를 찾지 않게 되는 사이, 사소한 다툼들로 소중한 인연들과 허무하게 멀어진 사이, 한때 정말 친했지만 기억도 안 날 만큼 갑자기 소식이 끊긴 사이. 나는 정말 순수하게 다시 만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이 커져갔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 어차피 결혼식도 가족끼리 소박하게 할 생각이고(그때는 그렇게 정했었다), 하물며 알게 되더라도 부담은 주기 싫어. 가족끼리 식을 올린다고 말하고 초대는 안 할 생각이니까, 지금 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연락해 봐야지"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경우에는 분명 그랬다.


꿈속에서


결혼식이 끝나고 요즘 내가 자주 꾸는 꿈들은, 지난 인연들과 화해를 하거나 다시 만나는 꿈이다. 꿈속에서 그들에게 나는 수십 번을 해명하고, 그들을 붙잡는다. "보고 싶었다고, 진작 연락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지만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컸다고" 그리고 그들은 내 이야기를 조용히 귀담아듣고, 내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준다. "그래 여울아,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아,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구나, 나의 진심을 알아줬구나, 너무너무 행복하다,라는 희망이 생겨버릴 때 꿈에서 깨버린다. 10대 시절, 누군가에 쫓기고, 도망가는 꿈을 꿨을 때는, 꿈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었는데, 요즘은 꿈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다.


꿈속에서 우리는 매일 화해를 한다. 너는 매일 내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너는 매일 내게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잘 지낼 수 있다고, 나도 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나를 다독여주고, 내 마음을 달래준다. 꿈속에서 우리는 매일 화해를 한다. 하지만 꿈속에서 수십 번을 수백 번을 화해를 해도 현실은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다. 여전히 너는 내 진심을 몰라주고, 오해를 하고, 멀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허공에 대고 외친다. "이대로 우리 관계가 방치되면 안 된다고! 나중에는 거미들이 자리를 잡고 거미집을 지을 거라고! 그러면 너와 내가 있을 공간이 없어져버린다고!"


나는 언제까지 이 꿈을 꿀까?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지나가버린 인연들을 다시 만나서 정말로 화해를 할 때까지? 이 꿈의 끝은 무엇일까? 언제 끝날까....


그렇게 오늘도 꿈속에서 너를 만나고, 수십 번, 수백 번 화해를 한다.

우리는 행복하게 웃고 있다. 

행복한 상태에서 나는 꿈에서 깬다.

늘도, 아무도 용서받지 못하고 용서하지 않는 꿈을 꿨구나.



글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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