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때가 2017년이었다.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세상이 떠나가라 난리 부르스를 떨었을 때였으니까.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다가 영화를 찍겠다며 다시 학교에 편입으로 들어갔고, 거기에 만나게 된 편입생 동기들과 첫 학기 여름방학에 '영화 글쓰기 모임' 같은 걸 했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주제에 대한 글을 써서 함께 토론도 하고 발표도 하면서 서로의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는 목표로 모임을 진행했었는데, 그때 썼던 글들을 브런치에 처음으로 올렸었다.
첫 브런치 스토리
언제부터 내가 책을 좋아했나, 그건 모르겠다. 이 세상에 모든 책을 다 보지 못하고 죽는 인생이 제일 싫다는 생각을 고등학생때 했었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다 알지 못하고, 다 먹지 못하고 죽는 건 괜찮은데, 재밌는 책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할 것 같았고 싫었다. 그렇다고 엄청난 다독가도 아니었고, 그냥 책을 항상 곁에 쌓아두면서 초콜릿 까먹듯이 열어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나와 맞는 책을 만나면 하루 종일 낭만에 젖어있었고, 내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 날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한 책을 발견했는데, 그 작가님의 소개글에 브런치 주소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이곳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나만의 글쓰기 능력을 보여줘야 통과해야 자신의 방을 개설할 수 있었다. 브런치가 좋았던 이유가, 부가적인 기능이 크게 없어서 선택할 거리가 별로 없었고, 모든 게 직관적이어서 좋았다. 깔끔하고 심플한 인터페이스에,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있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서 글을 써서 내야 하니, 거기서 썼던 글을 이곳에도 올려보자, 라는 취지로 바로 브런치 작가신청을 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차곡차곡 나의 글을 올린 지 8년이 되었다. 애초에 브런치 스토리의 구조상 유료광고나, 기타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좋았던 것도 있었다. 마음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나도 이곳을 찾아서 글을 썼고, 삶이 힘들거나 여유가 없을 때는 몇 년씩 방치한 적도 있다. 의무적으로 글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돈을 받고 쓰는 글이 아니니까. 그렇게 자유롭게 글을 썼다가, 쓰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3년 동안 운영했던 가게를 폐업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아주 많이 생겼다. 그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를 하나둘 씩 풀어가고 싶었고, 다시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신기한 기능이 많이 생겼다. 그중에 하나가 '브런치 멤버십'인데, 구독자가 해당 작가의 유료 구독자가 되면, 작가가 설정한 비밀글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능이 너무 신기하고 대단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브런치 스토리의 추구미는, '상업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아마추어 작가의 아마추어 같지 않는 보석 같은 글'이 아니었던가? 브런치 스토리가 이런 도전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보통 다른 영화나 음악 플랫폼처럼 월 구독료를 내면 모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달리, 브런치는 희망하는 작가에게만 구독료를 지불해야 해당 작가가 제공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솔직히 이 시스템을 보자마자 이건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나 지식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내가 쓴 이상한 글을 돈 주고 보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 이거 나름 괜찮을 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요즘 쏠쏠하게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나만의 법칙 같은 게 생겼다.
브런치 멤버십에 대한 고찰
'누가 브런치 멤버십의 구독자가 될까?'라는 생각의 전환을 해보았을 때, 어떤 작가의 구독료를 내고 그 작가의 모든 글을 볼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일단 작가가 설정한 글의 콘셉트이나 장르가 '내게 도움이 되는 글'이어야 확률이 높다. 정보전달의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고서야, 또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뱀 세 마리 한테 물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제 산책을 하다가 두꺼비를 보았습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돈 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런 이상한 글을 쓴다)
두 번째로 그 작가를 신뢰해야 한다. 단순하게 말해서 '이 사람이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인가, 꾸준히 올리는 사람인가'에 대한 신뢰가 보장되어야 한다. 요구루트 배달도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오는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요구르트를 위해 돈을 내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일단 이 두 가지가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뱀 꿈을 꾸고 두꺼비를 본 30대 여자의 삶'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 한 적 없고, 그냥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 조금 숨기고 싶은 내용의 글을 쓸 때는 신비주의 콘셉트로다가 유료설정을 하고 있다. '와, 이거 좀 재밌어요. 여러분. 광장으로 모여서 제 글을 봐주세요'라고 생각이 드는 글을 썼을 때는 '전체 보기'로 올리고, 이 글은 제발 개미 한 마리도 안 봤으면 좋겠다는 글은 '브런치 멤버십'글로 설정하고 있다. 수익성과는 상관없이 그냥 나만의 재밌는 놀이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책을 내서 돈을 벌거나, 블로그를 운영해서 돈을 버는 법을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낭만은 사라지고 자꾸만 절박해지고, 또 구질구질해지고, 더 도망가고 싶을 지어다. 예술을 놓고 모두가 힘들다, 하지 마라, 투성이지만 결국 그것을 뚫고 걸어가는 이들의 마음은 낭만 하나로 버티는 것이 아니던가.
ㅡ 그거 하지 마, 돈도 안 되고, 성공하기도 힘들어
ㅡ 어 알아 그래도 재밌잖아
돈이야 뱀장어 장사를 하든 두꺼비 먹이를 팔든, 다른 걸로 충분히 벌고, 아무 걱정 없이, 불안함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꺼비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시냇물도 나오고 흙냄새도 맡는 것이고, 가끔 행운이 오게 된다면 기분 좋은 이슬비정도 내리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평생 아무것도 모르는 채 행복한 두꺼비로 살지어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