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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성장

by 여미

살면서 내 방을 제대로 치워본 적이 없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기존에 있었던 사물이 인간을 해칠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절대 옮기거나 버리지 않았으며 새로운 품목을 밖에서 가져오면 그 위에 그대로 탑처럼 쌓아 올려놨다. 나의 임무는 갖다 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방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가끔 내 방 어딘가에 숨어 사는 괴물이 먹고 나서 아무렇게나 뱉어 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스스로 만들어낸 최악의 구조물을 그렇게 비난하고 있었다.


최근에 방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듣고 잠을 자는 이 공간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나라는 사람이 쓰는 창작에도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솔직한 마음은 최소한 사람답게 살고자 했다. 이곳은 정상적인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명확했다. 길고 길었던 학업이 종료되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며, 토할 것 같았던 졸업 영화가 끝났기 때문이다.


방을 뒤엎기 시작하면서 몰랐던 사실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특별한 조건을 따지지 않고 대부분 구입하는 탓에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한 권씩 꺼내어 살펴보니, 그 날 어떤 마음으로 책을 구입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까지 선명했다. 저마다 내게 의미가 있었지만, 이 조그마한 방에 모든 책들을 떠안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첫인상이 강렬한 책들과 감흥이 적은 책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선물 받은 책을 제외하고 더 이상 내게 소장 가치가 없는 것은 버려야 했다.


책과 함께한 시간


열다섯 초여름쯤 이였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배반의 여름’을 읽고 한동안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어서는 광경을 처음 목격했다. 주옥같은 비유와 치밀한 묘사에 감탄하느라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상당히 힘겨웠던 기억이 있다. 작은 공책에 필사까지 해놓고 어떤 문장은 외우고 다녔다. 십여 년 만에 이 책과 나란히 마주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다른 한쪽 구석에는 국어 교과서가 학년별로 줄지어서 먼지와 함께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나는 국어 시간을 유독 좋아했다. 그 안에 실린 시, 수필, 소설은 하나 같이 모두 내게 말을 걸곤 했다. 홀로 있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고, 때로는 가족이 되어주기도 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모든 교과서를 버렸지만, 국어 교과서만큼은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언제 다시 펼쳐볼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간직해야겠다.

사랑하지만, 공허할 때가 있지 않는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서 책을 사기 시작했다. 작가는 나 대신 이름을 팔고 수치스러운 일들까지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군중의 공감을 사고 위로하지 않는가. 적어도 나는 많이 위안받았다. 책을 버린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다. 그곳에는 결핍된 나의 과거가 있었고, 그때 당시의 고유한 시간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방은 성장했다.


이유 없이 간직하기만 하고 있었던 물건들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굉장한 성장이다. 낡고 오래된 책장을 버리고, 작지만 심플한 디자인의 책장을 하나 구입했다. 침대 옆에 책을 둘 수 있는 낮은 선반과 통나무로 된 스피커, 전구가 달린 스탠드도 새 식구로 들였다.


오늘부터 나의 공간은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한눈에 봐도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통나무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노란빛 등 아래에서 최근에 선물 받은 책을 펼쳤다.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해당 글은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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