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여미 Mar 19. 2018

소심한 청개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집불통 청개구리다. 


앞에서는 ‘네, 잘 알겠습니다’ 라며 끄덕끄덕 거리고 뒤에서는 하나도 안 듣고 내 멋대로 행동하거나 원래 마음먹은 것을 그대로 실천한다. 어렸을 때는 내가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말주변도 없고 소심한 탓에 그저 타인의 제안이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이 있었고, 자기 발언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단지 스스로 납득이 되고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는 도무지 무언가를 시작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사를 당당하게 밝힐 정도의 용기도 없었다. 어느새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청개구리가 되었다. 어딜 가나 동료들과 선생님은 이런 나를 싫어하고 답답해했다. 


열여섯 살, 처음으로 미술학원을 다녔다. 고집불통 딸을 꺾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반대하던 미술을 결국 허락하셨다. 하지만 점점 다른 학생들과 점점 실력 차이를 느끼게 되면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도, 짓궂은 친구들이 몰려와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내 그림을 보며 비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우승 꽝스러운 캐릭터만 그리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매일 울었다. 


‘나는 못생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책망하며 버스로 네 정거장이나 되는, 그 먼 길을 훌쩍이며 걸어 다녔다. 미술 선생님은 내게 말하곤 했다. 이렇게 못생기게 그리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일반적인 대중은 예쁜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원 친구들은 여전히 내 그림을 보며 웃고 떠들어댔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장난이고 농담이었을 지라도, 내게는 모두 상처가 되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서도 울었고, 집에 가면서도 울었다. 소질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라며 그림 그리는 일이 이전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학원을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실컷 울고 난 후에도 다시 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 그림을 사랑했다. 내가 그린 캐릭터에 저마다 사연을 덧붙였고, 그 사연은 언제나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4년 후, 학원에서 유일하게 애니메이션과에 홀로 합격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계속 그리던 그림, 그 모양새를 유지했다. 그림 안에 스토리와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함께 엮었을 뿐이었고, 남들이 10장을 그렸을 때 나는 100장을 그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기존의 추구하던 그림체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고, 그 애니메이션은 국내의 가장 큰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약 5년 동안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영과 수상을 기록했다. 프랑스 기자와의 인터뷰, 관객들과의 만남, 모든 것이 한여름밤의 꿈과 같았다.  


문어를 그리는 아이, 2013

이후에도 내가 하고자 하는 크고 작은 일에 수많은 억압과 질타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소심한 자아에 극도로 타격을 받아 이미 눈물은 볼 위로 흐르고 있었다. 그럴수록 청개구리는 더 높이, 더 멀리 튀어올랐다. 때로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으며,  가끔은 타인의 말이 옳을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그 소리에 진지하게 경청은 하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실천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으니까


세상만사 모든 일에 이유는 있지만, 정답은 없다. 나보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나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나보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내 실패에 대신 슬퍼하고 눈물 흘려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거나 그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녕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미련이라는 것이 없다.  


나는 남 탓을 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내 멋대로 한다. 


앞으로도 내가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의 깨달음을 스스로 얻을 것이다. 내 안에서 틀린 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포기할 때까지, 아마 청개구리의 소심한 도전기는 계속되지 않을까.  


오늘도 소심하고 상처 많은 소녀는 운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겨둔 날개를 필 준비를 한다.


내 안의  개구리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yeomi_writer/


이전 02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울면서 걷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