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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r 26. 2018

행복에 대하여

내 마음의 풍요로부터

나는 현재의 상태를 기준으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하곤 한다. 조금이라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있거나 기분이 안좋으면 결코 그 누군가에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좋은 구경을 했거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어렴풋한 희망의 찰나를 느꼈을 때, 어떤 이로부터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을 때 참 행복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순간들은 금새 잊혀진다. 행복은 결코 매일 찾아오지도 않는다. 살면서 아주 가끔, 그것도 나그네 마냥 살며시 왔다가 금새 떠나가 버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생활의 대한 충분한 만족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라는 단어가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행복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초등학생 때까지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때 당시 엘리베이터도 없었고, 좁디 좁은 계단을 한 줄로 올라갈 정도로 여유 공간이 없는 곳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아파트는 물청소를 굉장히 자주 했던 것 같았고, 그 공간에는 세제 냄새와 빗물 냄새가 항상 가득했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상쾌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딱히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여러 벌 샀다. 어머니는 항상 이유가 있어야지만 지갑을 여시는 분이셨는데 그날 따라 아무런 이유 없이 거금을 지불하셨다. 나와 언니가 원하는 것들을 고르게 한 뒤 흔쾌히 카트에 담으시고는 계산을 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품에 가득 안고 집으로 향했다.


당장 내일부터 새 옷을 입는다는 설렘으로 기분이 좋은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느끼는 오묘한 감정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언니는 그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 속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을 행하고 있었지만 유독 나 혼자만 춤을 추듯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덩실 덩실 까지는 아니더라도 계단을 오르는 행위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폴짝 거리면서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서야 시멘트 계단 한구석에 움푹 파인 부분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안에 스며든 고인 물에 보랏빛이 돌면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는 듯 보였다. 복도 창문 틈에서 흘러 나오는 시원한 여름 바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아직 마르지 않은 고인 물의 퀴퀴한 냄새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풍부한 공감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삐걱 거리는 낡은 배를 타고 숲 속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오는 것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공상에 가까운 무한한 사색에 잠기면서 함께 딸려오는 무한한 감사의 시간. 낡고 허름하지만 안락한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의 충분한 지원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감촉. 10살의 나는 아직도 그 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우 안정적인 상태의 내가 가질 수 있는 기분 좋은 특권, 행복이라는 전율이 마음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넘쳐 흐르고 있었다.  


온 몸이 마비된 듯 정신이 오묘하면서도 기분 좋은 설렘이 발 끝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사랑이구나, 내가 보는 이 세상은 아름다움이 가득하구나.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사물, 자연물, 냄새, 소음, 바람, 공기. 이 모든 것이 행복한 나에게는 새로운 판타지가 되어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왔구나.  


행복은 감사함의 시작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행복과 연결된다. 타인의 이유 없는 베품이 고마움으로 느껴지고,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호감이 극대화 되면서 나는 사랑받을 정도의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행복한 자신감이 생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나를 향한 무한한 지원 또한 ‘가족’ 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성장하게 된다. 모든 존재 자체는 소중하고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재미있고 아름다운 구경거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그것들을 충분히 느끼고 살아갈 나날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  


우리는 사랑을 해야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 나의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이 세계가 사실은 육면체를 가진 어떤 공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공간 안으로 들어오다 보면 자그마한 문이 보이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더 넓고 풍부한 세계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 마음이 풍족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여유와 행복이라는 것이다.   


마음


행복은 마음의 풍요 로부터 생긴다. 스스로 마음의 풍요를 허락하지 않으면 행복이 들어갈 자리는 절대 생겨나지 않는다. 행복은 현재의 감정 상태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상이 불행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수많은 나날들을 큰 자극없이 보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나날들을 평범한 일상으로 보내는 것은 매우 다행인 것일 수도 있다. 


큰 문제 없이 별 탈 없이 산다는 것.

또 다른 행복인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의 풍요로부터, 행복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eomi_writer/



여미 소속 직업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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