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미 Apr 09. 2018

걸어도 걸어도

나홀로 여행

가끔 혼자 여행을 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으러 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발길을 돌려 고등어구이 전문점을 가도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 사람들과의 여행도 아쉬운 적이 많았다. 분명 밖에서 반나절 동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을 때는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여행지에 와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뼛속부터 올빼미의 습성이 갖고 태어났다. 새벽까지 버틸 대로 버티다가 동이 트기 직전에 잠이 든다. 아침에는 느긋하게 일어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잠에서 깨더라도 바로 일어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졸린 느낌을 즐기면서 머리를 식힌다. 허나 이런 나를 이해 못하는 아침형 인간이 있다. 그들은 아침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실천해야 뿌듯해한다. 일어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샤워부터 하고, 아침밥을 먹고, 산책까지 해야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딱히 오전에 급한 일이 없는 이상 이불속을 벗어나지 않는 나에게는 신기한 광경인 셈이다. 그래서 아무리 친해도 나와 딱 맞는 여행 동반자를 찾기는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한 부분이 좋으면 다른 하나가 아쉬운 법이다.


걸어도 걸어도


그래서 나는 타협을 포기하고 고독을 안으며 혼자 떠난다. 


강원도 태백에 홀로 간 적이 있다. 그곳에 유명한 명소인 ‘바람의 언덕’이라는 곳이 있는데, 정상에서 풍차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경치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 날은 무더운 여름이었고 땡볕 그 자체였다. 언덕이 높지는 않았지만, 뱅글뱅글 돌면서 올라가야 꼭대기로 다다를 수 있는 모양새였다. 아마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 또한 아마 택시를 타고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든든한 밀짚 모자가 있었다. 그가 햇빛을 가려줄 것이고, 튼튼한 두 다리가 버텨줄 것이며 약간의 바람이 나를 식혀주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직접 걸어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배추밭을 헤매는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 같긴 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미 더울 때로 더웠고 지칠 때로 지쳤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생이라는 것을 더 하고 싶었다. 중간에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여 정상까지 오르는데 3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햇빛이 쨍쨍할 때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꼭대기에 도착하니 노을 진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달궈진 내 몸이 식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정상의 풍경은 초록색 풀밭과 커다란 바람개비가 전부인 것이라 허탈한 느낌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 까지도 그때의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더위와 싸우면서 인내하고 견뎌왔던 내 마음가짐, 결코 타협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던 단단함.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끝에는 정상보다 더 빛나는 내가 서있었다.  


2015년, 태백

글 여미

yeoulhan@nate.com

커버사진 임경복



이전 05화 내 시간 사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